발육의 깊이
김 보라 | 시
피터팬이 콧수염을 정돈하는
이상한 꿈을 꾸었어요.
나는 쉽게 잠 못 이루고
며칠째 베개를 뒤척이고 있지요
언제부터였을까요?
엄마는 내가 아직도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데
무럭무럭 자라나던 생각은
생장점을 멈춘 지 오래에요
소독차 엉덩이가 내뿜는
방귀를 쫓아다니지 않았을 때
나는 비로소 알았어요.
앞가슴은 자목련처럼 부풀고
머리카락은 가지를 쳤어요.
물도 햇볕도 주지도 않았건만
남몰래 아니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은 눈금을 매길 수도 없이
훌쩍 자라나고 있어요.
해묵은 교복 치마를 버리던 날,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버릇이
하염없이 손을 흔드는 버릇이
문득 돌이켜보면 낯선 내가
새롭게 태어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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