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밥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그녀가 궁리할 때, 그제야 아버지는 고무신을 질질 끌며 들
어오곤 했다. 고된 노동과 피곤함에 찌든 아버지는 술에 흠뻑 취해 갈지자로 걸어가 마루에 사
지를 뻗는 게 일상이었고, 평소보다 피곤이 덜할 땐 가차 없이 당신 아내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무식한 껍데기 같은 년……. 너는 할 줄 아는 게 도대체 뭐가 있느냔 말이야……. 헤헤 웃어
주는 거 밖에 못하지? 그 잘나신 얼굴 이제 어따 쓰실꼬!”
아버지의 비방은 당신을 찾으려 했던 아내의 노력을 무참히 짓밟았다. 그녀가 무슨 애를 쓰
든 아버지의 눈엔 그저 빈껍데기일 뿐,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당시 일곱 살 꼬마였던
나는, 그녀를 닮은 모습으로 세상을 살다 보면 아버지 같은 사람들에게 나도 똑같이 당하고 말
거란 걸 일찍이 깨달았다.
그 이후로 나는 또래 아이들이 계집애의 호감을 사려 머리에 침을 묻힐 때마다 집에서 책 읽
기에 주력했다. 저들이 목숨 거는 계집도 시간이 지나면 제가 먼저 질릴 게 뻔했기 때문이다.
“잘 가거라.”
시끄럽게 열을 내며 달려오는 열차 소음에 잠겼던 회상에서 깨어났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
느새 아버지는 나에게 등을 보인 채 멀어지고 있었다. 언제 만나자는 기약도 없이 자취를 감춘
아버지는, 집으로 직행하지 않을 게 불 보듯 뻔했다. 경성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으로 내
려왔을 땐, 동생과 그녀만이 나의 유년 시절 집을 지키고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