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WEEN THE LINES ISSUE 10 'YOU' | Page 48

當身(당신) _투와이 겨울에 피우는 담배는, 그 냄새가 봄에 피는 꽃보다도 강했다. 그런 매큼한 냄새에 즉각 반 응해버리는 내 망가진 호흡기를 알면서도 아버지는 계속 담배를 피웠다. 혼잡한 경부선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마중 나온 아버지의 말을 들어주는 것과 열차가 오길 기다리는 수 밖엔 없었다. 담배 냄새가 차츰 잦아들 때쯤, 아버지는 ‘네 엄마는 빈껍데기였다’며 그녀 이야기로 말문 을 텄다. “얼굴이 이쁘면 속이 비었다는 게 참말이었어. 그러니까 너는 이번 기회에 경성에 가서, 큰아 버지 말씀 잘 듣고 그토록 하고 싶었던 건축도 공부하면서 속을 채우도록 해.” 속사포처럼 그녀의 험담을 늘어놓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뜻밖의 짧은 한탄이었다. 그러나 그 짧은 한탄이 왜 내게는 ‘넌 네 엄마처럼 살지 마라’고 들렸던 걸까. 동시에 나는 어린 시절 을 떠올리며 회상에 잠겼다. 사내 주제에 얼굴이 곱상하네. 요런 놈들이 크면 훤칠허니 잘생겨진다고. 어릴 적부터 동네 어른들에게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온 말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버 지는, 스치는 사람마다 족족 나와 그녀에게 던지는 찬사에 배시시 웃으며 좋아했던 평범한 가 장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당신 아내에 대한 아버지의 찬사는 줄어들기 시작했다. 네, 다섯 살 무렵 내가 한창 동네에서 어리광을 부리며 사랑받을 때, 아버지는 그 틈에서 내 손목을 이끌며 저물어져 가는 노을을 등지고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속삭였다. 사람들 단말에 너무 빠지지 말어. 그러다 너를 잃는다. 커가면서, 사람들의 사탕 발린 말에 나 자신을 쉽사리 내보이지 않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남에게 냉담히 반응하며 나를 숨긴다 해도 외양에 대한 칭찬이 끊긴 건 아니 었다. 그럴수록 아버지는, 당신 아내에게 화를 냈는데 그녀는 남편의 무자비한 분노에 움츠러 들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몰랐다. 적어도, 몰랐을 것이라고 나는 추측한다. 그녀도 나름대로 당신 남편의 사 랑을 받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아름다움과 영원성만을 갈구하는 남편이 당신의 주름살과 희끗희끗한 머리카락까지 사랑해주기를 바라면서. 때가 되면 탁해질 부드러운 흰 살결에 갇힌 채, 빛내지 못한 당신의 진정한 내면을 찾으려 애썼다는 것을. 여섯 식구 삼시 세끼를 준비하고, 밥풀 묻은 그릇을 씻고, 허리를 숙여 우리의 발자국을 물기 로 닦아내는 그녀에게 유일한 낙은 나와 내 동생, 그리고 아버지뿐이었다. 그런 그녀가 다른 지 붕 아래 아낙네들과 달랐던 점이 있다면 바로, 독서를 했다는 것이다. (큰아버지께서 내게 물려 주신 책으로) 그럴 때면 괜히 나는 무안해져 동생과 골목으로 나가 나뭇가지로 집 쌓기 놀이를 했다. 우리 집을 다 쌓으면, 그다음엔 동생 소원대로 동생 집을 쌓아주고, 동생 집을 다 쌓으면 동생이 쌓아주는 내 집을 구경했다. 그러다 해가 저물면 바지에 묻은 흙을 털고 일어나 동생과 집으로 들어갔는데, 언제 책을 다 읽었는지 몸을 잔뜩 웅크리며 밥을 짓고 있는 그녀가 보였다. 고소하고 짭짤한 음식 냄새가 각 방 사이로 스며들면, 한두 명씩 밥상으로 모여들었다. 아버 지를 위한 자리는 주인을 잃은 채 모두가 저녁을 함께했다. 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