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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칼럼 교무 안효길의 마음 공부방 (원불교 부산 명륜 교당 주임) ........................................................................................................................................................................... < 몰라서 그랬겠지. 어쩌다 보니 그랬겠지. > 한 도반이 말했다. 사람들이 음식을 먹을 때 많이 흘리는 것은 결국 한번에 떠서 많이 먹기 위한 ‘욕심’때문이라고. 욕심? 얼핏 이해가 됐지만 배고파서 음식을 먹는 그 거룩한 행위 자체에 과도한 욕심이라는 단어를 붙인다는 것 은 너무 잔인하다 생각되었다. 욕심(欲心)과 욕심(慾心)은 다르다. 전자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대변하며, 후자는 분수에 넘치게 과히 취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전자의 욕심은 어찌할 수 없는 자연발생적이나 후자는 조절이 가능하다. 대 게 후자의 욕심을 일러 어리석음 즉, ‘무지(無智)’라고 부르며 무지는 욕심(慾心)에 대한 조절 장애를 말한다. 그러나 무지는 배움이 없어 무식한 것과는 다른 의미다. 예로 과도한 양을 그릇에 담으면 뭐든지 넘치고 흐른다는 기본적 상식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 다. 그러나 극도록 배가 고픈 혹은 참기 어려운 순간에서는 상식의 불이 꺼지면서 마음이 어 두워지고 어느덧 철부지 아기가 되어 있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것은 큰 중범죄를 죄 수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나 보통 일상에서 겪는 흔한 경험일 뿐. 정도의 차이에 따라 중죄와 일상의 허물 로 나뉠뿐이다. 배고픈 어린 조카를 위해 빵 한조각 훔친 댓가로 19년의 세월을 감옥에 보낸 장발장을 비난만 할 수 없는 것은 그가 물건을 훔치면 잡혀간다는 인과적 법 칙을 몰라서가 아닐터. 조카와 가족들을 위해 살아야만 한다는 기본적 인간 의 욕구(欲心)가 욕심(慾心)으로 변해 이성과 상식의 불을 순간 꺼트려서 발생한 안타까운 결과 일뿐이다. 빵 훔친 것의 잘못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그 상황성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나 를 그와 같은 상황에 투영했을 경우 나는 더 나은 취사를 할 수 있었을까하는 반조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가끔 타인의 허물과 실수에 대해 과하고 냉정할 정도로 무 자비할 때가 있다. 원불교의 스승들은 실수를 몇 번 한 제자들에 게 그 사람이 몰라서 그랬겠지, 어쩌다 보니 그랬을것이다며 두둔해주는 것을 표준삼는다. 132 한아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