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96

한국군의 일군사령부가 있고 미군부대도 있는 지역이었다. 얼핏 보기에 밤 시간의 군부대주변에서 찹쌀떡 같은 것이 팔릴 수 있을까 싶기도 하겠지만 부대주변에는 식당이나 술집들이 꽤 많았다. 그만큼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를테면 기지촌 같은 형태의 지역이어서 의외의 시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이 판자촌에는 찹쌀떡을 찾는 입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 같았다.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야, 찹쌀떡” 하고 부르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나의 생각은 어긋나지 않은 셈이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주로 여자들이었다. 일들을 마치고 늦은 시간에 출출하거나 무료해 져서 찾는 사람도 있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몇 명씩 모아 앉아 화투노름을 하다가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술에 취해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어떤 사람들은 술김에서였는지 거스름돈을 받지 않으며 인심을 쓰는 사람도 있었다. 요새 말하는 팁이라는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기분을 내려는 것이었으리라. 판매에 대한 가능성이 보이고 용기가 생기니 목청이 터지기 시작했고 제법 우렁차지기도 했다. “메밀묵 사리어 찹쌀 떠억~ 약식 약밥~” 하는 소리의 높아진 톤은 사업이 번창해가고 있는 진군의 나팔소리 같았다. 통행금지시간이 있을 때여서 밤 열두 시 전에는 모두 팔고 돌아가야만 했는데 통금시간이 되기도 훨씬 전에 모두 팔고 돌아오는 발길은 가벼웠다. 어쩌다 두어 번 불량배들에게 약탈당하는 일도 있었다. 하루는 그 지역을 목청을 높이며 몇 바퀴씩이나 돌아봤지만 아직도 여러 개가 남아 있었다. 남아있는 수량은 거의 다 팔고 난 다음 내게로 돌아오는 몫의 분량이었다. 그렇다고 밤도 깊어만 가는 그 시각에 마냥 한곳만 돌아다녀봤자 별 수가 날 것 같지도 않아 돌아오는 중이었다. 돌아오면서도 계속 ‘찹쌀떡’은 외쳐댔다. 그때 “야, 찹쌀떡”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가로등 밑에서 나를 부른 사람은 십대 후반이나 이십 대 초반의 청년이었다. “몇 개나 있니?”, “열 개가 좀 넘는데 열 개 값만 주세요. 떨이로 드릴게요.” “싸줘.” 오늘 판매실적 백 프로라는 것을 속으로 외치며 신문지로 만든 봉투에 모두 담아 주었다. 그러나 그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만 남기고 그대로 가는 것이었다. “아저씨, 돈을 주고 가셔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