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93

증거인멸 (證據湮滅) 본의가 아니더라도 어쩌다 누구에게 몹쓸 일을 저지르고 난 뒤 그를 다시 만나게 되면 공연히 민망스럽고 마주 대하기가 거북살스러워진다. 죄책감 때문이리라. 중학교 때였던가. 하찮은 시비가 붙어 한 친구와 치고 받고 한 적이 있었다. 막무가내로 휘두른 내 주먹이 그 친구의 눈두덩을 가격하게 되었다. 눈두덩에 시퍼렇게 멍이든 그를 마주칠 때마다 나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일주일 정도 지나니 멍든 흔적이 없어졌었다. 증거가 없어진 셈이다. 이제는 그 일이 희미한 추억으로 내 마음속에 남아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 지금까지 흉한 상처로 남아있다면 나는 아직도 그 친구 앞에 떳떳하게 나서지를 못할 것이다. 싸움의 발단이 누구의 잘 잘못이든 간에 그의 얼굴에 흉터를 남기게 한 죄책감 때문일 것이다. 연 전에 철거되어 흔적조차 없어져버린 한국의 구 조선총독부 건물에 대한 안타까움이 가셔지지 않는다. 당시 일제는 식민지 개척의 권위적인 면모를 보이기 위해 경복궁 터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조선총독부 건물을 세웠다. 1919 년 6 월 25 일 착공하여 1926 년 10 월 1 일에 준공된 이 건물은 1945 년 9 월 9 일, 미 군정청(Capital Hall)이 들어서기까지 19 년 동안을 사용되어 왔다. 실제로 우리에게 사용되기는 1948 년 8 월 15 일 정부수립 이후부터였다. 일제 때는 일장기, 미군정시에는 성조기, 6.25 한국동란 중에는 인공기가 걸리기도 했던 과정을 거쳐 오는 동안 서울수복 시 북한군이 퇴각 할 때 인민군들이 불을 질러 내부가 전소되었고, 수복 후 중앙청사로 복구되었다. 1962 년 11 월 22 일 중앙청 복구 개청식이 있은 후 1982 년까지 중앙청으로 사용돼 왔었다. 그 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개축하여 용도변경을 하는 등 근대, 현대에 이르며 오욕의 역사를 치러냈던 곳이기도 했다. 해방 이후 이 구 조선총독부 건물에 대하여 일제의 잔재청산이라는 민족감정의 발로와 풍수지리학적으로 민족정기를 회복한다는 차원에서 철거의 당위성이 제시돼 왔었다. 그러다가 6 공 정부가 들어서서 1991 년 ‘경복궁 복원 10 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하던 이 건물을 철거키로 했다. 철거에 대해 학계로부터의 찬반논쟁을 일으켰고 또 국민의 관심사로 떠오르기도 했다. 철거를 찬성하는 쪽은 이 건물이 수도서울과 경복궁의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어 위치의 부적합성과 일본 군국주의의 잔재로 인한 반민족, 반역사적 성격을 내 세웠다. 반대하는 측은 이 건물의 역사적 의미는 보존돼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철거를 한다고 해서 민족정기가 되살아 날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었다. 과연 ‘일제의 잔재라든가 반민족, 반역사적’ 운운하는 이유만으로 역사의 현장을 사백팔십억 원 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면서까지 철거를 해야만 했을까. 건물 하나 철거를 한다고 해서 일제의 잔재가 청산된다고 볼 수 있었을까. 일제의 잔재에 대한 증거를 스스로 파기한 사람들은 어찌 보면 또 다른 의미의 ‘친일파’는 아니었을까 하는 느낌도 들고 이러한 행위가 바로 ‘이적행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지하층에는 독립투사, 우국지사를 끌어다 고문을 했던 흔적도 남아있었다고 한다. 이 건물 철거를 주관해온 관계부처나 담당자는 과연 애국을 하는 사람이며 일제 탄압에 대한 울분의 마음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을까. 이런 일을 주도한 당국자들을 나는 감히 ‘증거인멸’의 주범이라고 단죄를 하고 싶다. 일본의 왜곡된 교과서를 가지고 겉으로만 시위를 하는 척하면서도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도 못하고 있는 그들은 일제의 만행에 대한 중요한 사료 즉 결정적인 증거를 스스로 파기시키는 오류를 저지르고 말았다. 총독부의 마지막 초석이 거두어지고 있을 때 일본사람들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을는지도 모르겠다. 쇠말뚝 만 해도 그렇다. 지난해 8 월 15 일 광복 50 주년에는 청도군 화양읍 소라리 주부산 암반 위에 조선총독부가 지기를 끊기 위해 박아놓은 쇠말뚝을 뽑아냈었다. 왜 그 쇠말뚝을 뽑아내야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뽑아내면 막혔던 기가 되살아 날 것으로 생각했을까. 범국민운동으로 확산된 ‘일제 잔재 말살운동’의 일환으로 일제 잔학상 제거작업이라는 이름으로 쇠말뚝 뽑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또한 한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