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152

‘어머니와 씨암탉’은 60 년대 초 작가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이야기다. 한 시골 노파가, 땔 감 때문에 무허가 벌목 죄로 입건된 아들이, 정상참작으로 풀려나게 되자 감사의 표시로 씨암탉 한 마리를 들고 찾아왔었지만, 어머니가 끝내 받아주지 않고 되돌려 보냈다는 회고담을 그린 작품이다. 당시 지방법원의 판사였던 아버지는 너무나 강직했던 탓에 흔한 과일상자나 닭 한 마리도 용납하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 온 식구가 한 두 끼쯤 포식할 수도 있고 또 그대로 기른다면 계란도 얻어먹을 수 있을 텐데……. 하고 혼자 욕심도 내 보았지만 워낙 엄한 가풍이었던 지라 아이들의 소망 따위는 언감생심이었다. “가끔은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질 때가 있다. 가난했고 어려움도 많았지만 지금처럼 삭막하지는 않았던 시절이다. 헌 사과궤짝 하나도 소중히 여기고 굴비두름의 볏짚 하나도 허술하게 여기지 않던 시절. 작은 배려에도 감사하고 서로 사양하고 양보할 줄도 알던 시절. 고난 속에서도 외롭지 않던 그 때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공직자의 비리가 어마어마한 파랑으로 물결치는 요즈음의 세태 속에서 옛날을 회상하는 작가는 “그 때는 마치 수천 미터의 깊은 암반 밑에서 솟아오르는 맑은 물 같은 세상이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먼 동화의 나라 이야기 같은 청정객담(淸淨客談)이라 하겠다. ‘쌀 한 내끼’는 6. 25 전란 중에 겪었던 가난의 체험담이다. 미처 피난하지 못했던 작가의 부친이 ‘반동분자 1 호 판사’로 지목되어 북한군에게 쫓기고 있을 때, 가끔 깊은 밤에 찾아와 밥상을 대할라치면, 다섯 살짜리 철없는 동생이 “아버지 나 쌀 한 내끼만” 하고 칭얼대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을 아리게 했다는 이야기다. 온 식구들이 먹는 꽁보리밥에 겨우 쌀 한줌을 얹어 가장(家長)의 밥을 따로 차려주는 할머니의 정성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쌀 한 내끼는 쌀 한 톨을 의미하는 충청도 서해지방의 사투리란다. 6. 25 라는 전쟁의 와중에 고생 안하고 지낸 사람이 어디 있을까 만 위로 노모를 모시고 아래로는 7 남매의 자녀를 거느려야 했던 작가의 부모님으로서는 여간 한 고역이 아니었으리라. 이고 지고 업고 끌면서 떠난 피난 길. 그것은 실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유랑의 길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는 벌써 그 북새통의 피난생활들을 까맣게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일찍이 유태민족은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고 했다는데 우리는 고난도 원한도 한꺼번에 다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다. 오십 년이 넘고 반세기가 지났다며 말 잔치가 요란하다. 그러나 그들의 말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실제 겪었던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어떤 생각이 들어있을까. 한 모금의 물, 한 톨의 쌀, 그리고 무수히 흘린 피와 땀, 그 안에 들어있을 어떤 ‘소중함’ 같은 것을 그들은 알고나 있을까…….” “아버지! 나 쌀 한 내끼만” 하며 철없는 동생이 울부짖던 외마디 비명은 아직도 작가의 가슴을 후비고 있는데, 세상인심은 왜 이렇게도 빨리 변해버렸는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어제를 가리켜 오늘의 아버지라고 한다면, 우리는 마땅히 아버지의 공과를 오늘에 되살려 교훈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작가의 호소가 가슴으로 파고드는 작품이다. ‘원조 공처가’는 세속적인 공처가(恐妻家)의 이미지를 뒤집어 본심에서 울어나는 아내사랑의 의미로 전환시킨 격조 높은 작품이다. 다소 코믹한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실상 작가의 내심은 웃음거리의 차원을 넘어 자신의 진지한 생활철학을 보여주어 독자로 하여금 경탄의 염을 금치 못하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