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15

않고 계속 짖어댄다. 약간은 미안한 생각도 들고 민망스럽기도 하다. 창피하기도 하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게 무엇일까.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단지 무안스러운 마음에 빙그레 웃어넘기고 마는 수밖에는……. 그러나 나도 그에게 한마디쯤은 할 말이 있다. 나는 그에게서 한 알의 호두를 쟁취했지만 나 또한 그에게서 당하며 속을 썩고 있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거의 매일 이다시피 나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게 바로 그 놈이다. 개밥을 주면 친구들까지 데리고 떼거리로 몰려와 바닥을 내질 않나, 철 따라 열리는 과일은 채 익기도 전에 묵사발을 만들고 있으니 이제 지치기도 했다. 이십 세기 배가 노란 색을 띄우기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다.「며칠 있으면 햇과일 맛을 볼 수 있겠다」고 벼르고 있을라치면 어느 틈에 와서 선수를 써버리는 놈도 바로 그 녀석이다. 어디 그뿐인가. 매일같이 자동차 보닛 위에 그 질척하고 끈적끈적한 물질을 깔겨대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으니 나야말로 피해자로서의 어떤 대책마련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런데 까짓 호두인지 피칸 한 알 빼앗겼다고 저토록 안달을 하고 있으니 어지간한 녀석이다. 그의 먹거리를 빼앗은 일에 대해서는 미안하다만 그에게서 당하고 있는 나의 고통 또한 멈추어 질 것 같지가 않다. 그러나 빼앗고 빼앗기는 일, 본의이든 아니든 피해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일 자체도 공생의 관계에서 피할 수 없는 일이고 보면 이런 게 모두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여기에「생존경쟁」이라는 말을 찍어 붙인다는 건 지나친 비유일까. 그렇지만 내가 생각해온 그 미물, 까마귀 한 마리가 애써서 찾은 그 호두인지 피칸 한 알을 빼앗아 좋아라 까먹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본다. 정말 유치하다. 그것도 승리에서 거둔 전리품이랍시고 치켜들고 환호를 하고 있는 나, 정말 치사하다.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맛있더냐.”, “배부르더냐.”, “그딴 승리가 그렇게나 기쁘더냐”. “그것도 승리라고 여겨지더냐.”라고. 부끄러워진다. 까마귀 한 마리에게 보여준 인간으로서의 내 모습, 행위,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보고 있자니 그렇지 않아도 좁다란 어깨가 자꾸 움츠러지는 것 같다. 지구상에 생명을 가지고 있을, 생각이라는 걸 가지고 있을 모든 사람들에게도 무안스러운 마음이 든다. 풀, 나무, 벌레, 짐승, 새들 그리고 묵묵히 이런 꼴의 내 모습을 바라다보고 있었을 하늘이나 돌덩이 앞에서까지도 몸과 마음을 감추어버리고 싶어진다. 호두인지 피칸 한 알을 빼앗아 먹자고 전 인류를 망신시키고 있는 나 같은 철면피에게도 그나마 한 가닥 양심이라는 게 남아 있어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