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147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이날까지 이 사람에게 차이지 않고 오늘에 까지 이르게 됐다는 것, 나에게는 축복이다. 가끔 아내에게 “때려도 좋고 걷어차도 좋으니 제발 쫓아내지는 말아 달라”고 농을 하듯 아양을 떨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괜한 소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나마 남아있는 삶의 여백을 이제까지 걸어온 길의 각도에서 어긋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일 수도 있을게다. 그런데 요즘 들어 바짝 지내온 지난날들이 떠오르고 있으니 웬일일까. 어느 곳, 어느 때이던 그런 자리에 나설 때는 편안한 마음일 수는 없겠지만 무슨 기대 같은 것도 전혀 없지는 않았을 게다. 선이라는 걸 볼 때의 일이다. 이리저리 버티다 못이기는 체 하며 따라 나설 때는 그래도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었을 게다. 요즘 같이 계산에 의한 결혼조건 같은 것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어떤 여자일까’라는 궁금증과 호기심 같은 것이었으리라. 지금에 와서 생각을 해보니 그 당시 내가 그런 자리에 나서는 사람으로서의 마음 자세는 어떠했던가를 생각해 본다. 나 자신이 한 여자의 남편 감으로서의 충분한 격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하여 되돌아볼 줄도 아는 겸손 같은 것은 있었던가 싶기도 하고. 마치 선을 본다는 자체가 서로를 알고 알리기 위한 자리라기보다는 배우자를 고르기 위한 자리 정도로 여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나 자신만의 선택권으로 누구 하나를 고를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기나 한 것처럼. 아니면 왕후를 간택하는 임금의 위치에 있었기나 한 것처럼. 이제 와서야 내가 나 자신에 대한 분수도 모른 채 자기 본위의 입장에서만 건방을 떨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때의 일을 생각해 보면 삼십 년도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어깨가 움찔해진다. 이 사람은 흔히들 말하는 세련된 사람은 아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도 다른 대부분의 여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그런 모습은 아니었다. 이 말은 겉으로 나타나는 첫 인상 같은 것을 이야기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냥 여느 사람들에게서 느끼지 못하는 점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사람의 <촌티>가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지만. 선이란 걸 본다고 나온 자리에서만 해도 그렇다. 차림새며 언행이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 같았다. 우선 겉 차림새부터도 봐줄 만 했다. 등의 허리부분 중간쯤까지 내려온 긴 머리칼, 그 끝은 한일(一)자 형으로 잘려져 있었다. 마치 자를 대고 면도날로 일직선으로 잘라낸 것 같았다. 그날 입고 나온 레인코트는 또 어떠했던가. 어깨와 팔을 잇는 재봉 선은 양쪽 어깨의 끝에서 한 뼘 가량은 처져있을 만큼 커서 헐렁거렸다. 그것도 진한 초록색이었으니 가을도 한참 깊어진 그때에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했었을까. 누구에게서 빌려 입고 나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 같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신경 꽤나 쓴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나오기도 했었다.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선이라는 걸 본적이 몇 번 있었다. 그때 그들과의 대화라고 해 봤자 하나같이는 천편일률적인 내용들일 뿐이었다. 마치 미리 짜여 있는 대본을 읽고 있는 것 같은. 더러는 자기의 자랑스러운 면면을 은근히 보이기 위해 애를 쓰는 경우도 있었고. 아내는 앞에서 말한 부류의 사람들과 비교를 한다면 한마디로 좀 뻔뻔스러운 여자였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수줍어한다거나 어떤 상황에서도 거북스러워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시건방지게 고개를 바싹 쳐들고 잘난 척하며 자신만만해하는 모습도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어떤 누구 앞에서도 주눅이 들거나 내숭을 떨며 필요이상의 겸손을 떨려는 사람 같지도 않았고. 할 말은 서슴없이 다 하고. 당차다고나 할까. 억지로 말과 행동거지를 볼품 있게 꾸며보려거나 품위나 교양을 흉내 내려고 하지도 않았다. 무슨 사연 같은 것을 가슴속에 묻어놓고 끙끙 앓는 성격도 아닌 것 같았다. 나중 얘기지만 그런 사람들을 보면 닭살이 돋는 다는 그녀이기도 하지만. 가끔은 동문서답을 하여 요절복통을 하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답답하다거나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재미있는 코미디를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좋게 봐준다면 순수하고 때가 묻지 않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