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140

있는 시간은 하루 네 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아내는 저녁식사를 한 후 여덟 시쯤부터 출근하기 전까지 약 두어 시간을 자야 하기 때문이었다. 가족들은 이제 이러한 생활의 리듬에 맞추기 위한 자잘한 불편 같은 것은 감수해 나가야 했다. “해볼 만해.” 처음으로 밤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아내에게 “어땠어?”라고 묻는 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두 눈에는 핏발이 서있고 얼굴 색깔은 누렇게 떠있는 것 같았다. 계속 하품을 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을 짓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 같았다. 밤에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잠자는 시간이어서 가끔 응급환자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낮에 일하는 것보다 한가하여 해볼 만 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말은 가족들에게 걱정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무엇 좀 먹고 자라면 생각이 없다며 침대로 직행하려는 사람의 “괜찮다”는 말을 그대로 믿을 수가 있었겠는가. 피곤에 지쳐 먹는 것 자체가 귀찮을 수도 있었고 학교에서 아이들을 데려올 때까지 잠을 자야 하는데 무엇을 먹게 되면 그만큼 잠잘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사람은 잠귀가 밝은 사람이다. 신경이 예민하다고나 할까. 집안에서 히터나 에어컨이 돌아가는 소리는 물론 시계의 초침소리에도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이다. 집안의 분위기도 바뀌어졌다. 아내가 쓰는 방의 창문은 두꺼운 담요를 드리워 마치 영화관같이 어둡게 해두었다. 아이들과의 대화는 귓속말로 속삭여야 했고 걸음걸이는 발뒤꿈치를 들고 도둑고양이처럼 소리를 내지 않게 걸어야 했다. 문을 여닫을 때도 소리가 나지 않게 하기 위해 손잡이 돌리는 방법을 생각해가며 여러 차례 연습까지 해야 했던 일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기도 한다. 화장실과 전화기는 아내가 있는 방으로부터 가장 먼 곳에 있는 것 하나씩만 사용했다. 주말에는 아예 아이들을 공원이나 도서관에 데리고 가는 것도 한 방법이었다. 병원에서 밤샘을 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침대 속으로 들어간다 해도 바로 잠이 드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아이들의 아침식사와 등교준비, 그리고 그날그날 학교에서 필요한 것들을 점검하느라고 왔다 갔다 하며 속닥거리는 소리가 모두 귀에 들어오기도 했겠지만 이런 저런 생각에 바로 잠에 들지 못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가끔은 “이게 산다는 건가?” 아니면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건가?”라는 생각 같은 것도 하고 있었으리라. 아내의 출퇴근 시간과 아이들의 등 하교 시간이 서로 달라 아이들과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지극히 한정되어 있었다. 아이들이 집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부모 중 한 사람만이라도 집에 함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아내의 의견이기도 했었다. 텅 빈 집안에 저희들끼리 들어설 때와 엄마가 있을 때의 느낌이 어떻게 다를까를 생각해 보라는 말에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가끔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나 자신의 능력, 그 한계가 이 정도까지밖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 같은 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마음속으로만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어긋난 길로 벗어나지는 않았다. 그들도 이제 삼십 대 전후의 나이가 되어 각자가 전문인으로서 나름대로의 몫을 충분히 해나가고 있는 모습이 대견스럽기도 하다. 대단한 사람들이 되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답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 대견스럽다는 이야기이다. 사람답다는 것이 어떤 특정분야에서 크게 성공을 했다는 것은 아니고 단지 각자의 책임과 의무를 위해 무리 없이 정진해나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밤에 출근하는 여자’에서 ‘아침에 출근하는 여자’로 변신을 하게 된지도 이제 제법 오래 되었다. 십 년이 훨씬 넘게 아이들의 목에 열쇠목걸이를 걸어주지 않도록 하기 위한 아내의 결심. 그녀는 이것을 희생이었다고 생색내려 들지도 않는다. 일을 끝내고 돌아와서는 “밤새 일을 했기 때문에 피곤해 죽겠다”라기 보다는 “이제 일을 끝냈으니 시원하다. 이제 잠 좀 자야지”라며 미소 지으며 방으로 들어가는 그녀의 긍정적인 생각과 생활 태도이기도 하다. 이제 자랄 만큼 자란 지금의 아이들 모습을 바라다보며 미소 짓고 있는 그녀의 눈빛이 아름답다. 그런 눈빛 하나를 간수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날들을 견뎌왔을까. 하나의 싹을 틔우기 위해 한 톨의 알곡을 썩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