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따라 박영보 시집 오늘 따라 - 박영보 시집 | Page 74

멍청한 아이였으면 좋을 뻔 했다 집안에 여자라고는 마누라 하나밖에 없던 차에 한국에서 귀한 손님 하나가 왔다. 깜찍하고 예쁘장하게 생긴 열여섯 살짜리 여자아이였다. 수줍은 미소가 아름다웠다. 묻는 말에도 ‘네’나 ‘아뇨’ 라는 말 말고는 토를 다는 법이 없었다. 품 안에 안아주고 싶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니 본색이 들어났다. 나를 제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마음대로 가지고 놀려고 한다. 백발이 다된 나보다도 세상물정에 대하여는 훨씬 앞서가고 있는 것 같았다. 모르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사람을 제 입맛대로 맞추어 요리도 하고 이용해 먹을 줄도 아는 법을 터득하고 있는 것 같았다. 까질 대로 까져 있는 그 아이를 바라다보기가 징그럽다. 눈이 마주 치는 것도 무섭다. ‘서울깍쟁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지금은 시골의 아이들은 물론 벽촌의 어린아이들까지도 우리 때처럼 그렇게 앞뒤가 꽉 막혀있지는 않다고 한다. 그래도 나는 어수룩하고 멍청해 보이는 듯한 아이가 좋다. 더 사랑스러울 것만 같다 멍청하리만치 어수룩하고 순해빠진 그런 아이가 좋다. 그런 아이에게 라면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가 않을 것 같다. 간이라도 떼어 주고 싶을 것만 같다.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아이에게 라면 손해가 나더라도 아까 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