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자 [박영보 수필3집] 엄마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자 [박영보 수필3집] | Page 7

저 산에는 눈밭이 가뭄에 매말라 있던 대지에 비가 내린다. 일년중 비 한방울도 내리지 않다가 일월에 들어서서야 내리는 단비. 구지 ‘우기’라고까지야 말할 수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십일월 하순에서 일 이월 사이에 약간의 비가 내리는 남가주 지역의 기상 상태로 보아 금년들어 마지막 비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일년 중 이정도의 비라도 내려주시니 하나님께서는 이런 우리의 목마름까지도 마음에 두고 계시는가 보다. 먼 발치로 보이는 샌 버나디노 마운틴의 산등성이에는 하얀 눈으로 덮혀있다. 눈에 대한 소식을 대하거나 보이게 되면 산으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눈을 직접 밟아 본지가 언제였나 셈을 해봐도 햇수에 대한 정확한 계산이 나오지 않는다. 우리 부부는 스키에 빠져 주말마다 눈 덮인 로칼 마운틴을 찾았던 때도 있었다. 녹은 눈 위에 넘어져 속옷까지 젖게 되어도 춥다는 것은 리프트 운행시간이 마감 되어 돌아오게 될 때가 돼서야 느끼게 될 정도였다. 큰아이가 일곱 살, 막내가 네 살때부터 였으니 삼십년도 더 되었다. 스키를 떠날 때는 아이들이나 아내까지도 덩달아 들뜨게 된다. 집에서 직장까지 이십여 마일 정도의 운전을 지겨워하던 내가 스키장에 갈 때는 그렇게나 즐겁고 가벼운 마음일 수가 없었다. 마운틴 하이나 빅베어 같은 로칼 마운틴은 당일치기 스키의 단골 코스였다. 일년에 한두 번쯤은 사오일 계획으로 맴모스 마운틴이나 레잌 타호를 다녀 오기도 했었지만 가까운 로칼 스키장의 설비나 눈 상태로도 얼마든지 즐길수가 있었다. 어느새 우리 부부는 이제 늙은 노털이 돼 있는 건가. 두 아들 녀석의 나이가 사십대 초반이나 삼십대 후반에 들어서 있으니 먼 옛날 이야기가 되겠다. 녀석들이 중고등학교에 들어가고부터는 우리 부부를 끼어주려고도 하지 않아 스키 같은 것은 거의 잊어버리고 있은 지도 오래다. 녀석들과의 실력차이도 있었지만 스노보드에 재미를 붙이고 나서는 아예 같이가자는 말조차도 꺼내지 않는다. 스키 같은 것은 이제 구닥다리 취급을 받고 있는가 보다. 우리 부부가 녀석들에게 해 준 일들을 이제 아이들에게 베푸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시간의 빠른 흐름이 느껴진다. 일곱살 짜리와 네살 짜리에게 바다에 가서는 수영은 물론 스노클링이나 서핑을 하게 하고 산에가서는 스노보드. 철부지였던 게 엇그제 같은데 이제 제법 부모로서의 역할을 실습하고 있는 것 같아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아직도 산등성이에 쌓인 눈을 바라다 보게 되면 눈 비탈을 쌩쌩 거리고 치닫고 싶은 충동이 생기기도 한다. 잠깐 동안의생각일 뿐이고 가지 못해 안달이 날 정도가 아닌 걸 보면 한물 간 인생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십년도 훨씬 넘게 스키를 즐기며 보낸 시간이 있었으니 이제 와서 아쉬울 것도 없다. 아내도 육십대 후반으로 들어서니 이제 그런 기분은 뒷전에 밀어 둔 것 같다. “산에 한번 다녀올 생각 없느냐”고 물으면 피식 웃으며 “좋아하네~”란다. 삶에 지쳐 있는 걸까. 사실 내가 이런 제안을 해본 것도 꼭 가고 싶어서였을까. 막상 아내가 먼저 가자고 했어도 내쪽에서 망설였을지도 모른다. 지쳐있는 쪽은 아내보다도 내 쪽일지도 모를 일이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눈밭을 씽씽 달리며 기세를 높이던 그런 아내가 이제 손자 손녀 아이의 뺨을 쪽쪽거리며 예뻐하는 재미가 더 좋은가 보다. 교회에서 교우들과의 만남과 나눔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