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의샘터2022 Spring Summer | Page 43

일원으로 열심히 교회를 섬겼습니다 . 봉사의 필요성을 느끼며 자 라온 저는 기꺼이 저희 집에서 모임을 갖도록 했고 , 교회 성도들 을 위해 음식을 대접했지만 교회 예배에는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
그렇다면 뭐가 달라졌을까요 ? 우선 , 이 기간 동안 아내는 참석하 는 교회마다 , 소그룹마다 , 모든 여성 성경공부 모임에서 하나님 께서 제 마음을 어루만져 제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시고 주님 께 돌아오도록 기도 제목을 항상 나누었다고 합니다 . 놀랍게도 , 하나님은 저희에게 예상치 못한 축복된 선물 , 딸을 주셨습니다 . 아들 두명은 11살과 8살이었고 , 아내와 저는 30대 후반이라 저희 에게 더 이상 자녀는 없을거라 생각했습니다 . 하지만 , 그것은 하 나님의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 두 아들이 태어났을 때 아내가 다 녔던 교회에서는 부모가 원하면 특별한 절차없이 유아세례를 받 게 해주었습니다 . 하지만 저희가 딸을 출산할 때 다녔던 교회는 아기에게 세례를 주기 전에 부모들이 의무적으로 교육에 참석하 도록 했습니다 . 이 교육에 참석하면서 제 마음이 열렸고 , 제가 얼 마나 하나님께 소홀했던 아들이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 교육 의 내용은 부모의 기도생활과 하나님과의 교감이 자녀들에게 미 치는 중요한 영향을 강조했습니다 .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2시 간씩 기도하고 , 제가 잠든 줄 알고 밤에 몰래 들어오셔서 제 손을 잡고 기도해주셨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모두 되살아났습니다 . 그래서 딸아이가 세례를 받을 때 , 담임목사님께서 저를 돌아보시 며 , 모든 성도들 앞에서 그날부터 교회에 계속 다니라고 하셨는 데 , 놀랍게도 저는 그러겠다고 대답했습니다 . 왜냐하면 하나님께 서 이미 그 결정을 제 마음에 두셨기 때문이었습니다 .
이렇게 해서 저는 신앙인으로 다시 태어났고 그날 이후로 , 교회 에 열심히 다니며 최선을 다해 주님이 주신 은사로 교회를 섬겼 습니다 . 저희는 그 교회 ( 보스턴 한인장로교회 ) 에 17년 동안 다니 면서 저는 EM 디렉터로 봉사했고 , 이후에 저는 안수 집사로 아내 는 권사가 되었습니다 . 제가 집사 안수를 받을 때 저를 위해 기도 해주신 많은 여성 성도님들이 뿌듯해 하시던 것이 생생히 기억 납니다 . 그분들은 수년 동안 제 아내와 함께 제가 교회로 돌아오 기를 간절히 기도했는데 , 제 임직식을 보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눈 앞에서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
을 내렸습니다 .
저희가 어느 교회를 다녀야 할 지 고민하던 중 어느 날 밤 저는 잠 이 오지 않아서 성경책을 읽는데 하나님은 저에게 디도서를 읽게 하셨습니다 . 거기에 바울이 교회와 그 지도자들의 올바른 구조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내용이 나와 있었습니다 . 제가 이전에 섬 기던 교회를 떠나게 된 고민을 하나님께서 검증해주시는 것 같아 위로를 받았습니다 . 그 주말에 저희는 Living Hope Raleigh의 온라인 예배를 보기로 했습니다 . 마침 이수현목사님의 안수 예배 였는데 좋았습니다 , 하지만 목사님께서 설교한 본문 말씀이 ‘ 디 도서 ’ 였을 때 저희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 마치 ,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FKBC로 가라고 가리키시는 것 같았습니다 .
코비드로 인해 몇 달 동안은 온라인 예배를 드렸고 , 코비드 상 황이 좀 나아지던 작년 9월에 마침내 현장 예배를 다시기 시작 했습니다 .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교회의 다른 성도님들을 만나 기 어려워 교회에 멤버 등록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 그러던 중 몇몇 성도님들과 EM의 안수집사님께서 저희를 방문해서 EM / Living Hope Raleigh의 역사와 교회에 대한 비전을 알려주셨습 니다 . 저 또한 저의 간증과 저와 비슷한 길을 가는 다른 성도님 들과 젊은이들을 위해 EM을 섬기려는 저의 소명을 함께 나누었 습니다 .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 우리의 비전이 매우 비슷하다 는 것이 명확해졌고 그 날 밤 저희는 FKBC 회원이 되기로 결심 했습니다 .
저희는 주님이 주신 은사로 교회를 최선을 다해 섬길 것입니다 . 한어부 성도님들 , 한어부 성도님들은 영어부와 언어 장벽이 있어 서 영어부 성도들과 대화를 다소 어려워함을 알고 있습니다 . 하 지만 , 저는 한국인 1세 부인과 결혼한지 30년이 되다보니 , 제 한 국어 실력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 주저하지 마시고 저에게 한국어 로 말을 걸어주세요 !
탕자처럼 방황하다가 결국 하나님 곁으로 돌아온 저의 경험이 한 국계 미국인 / 다인종 교회에서 , 영어 사역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 해 봉사하도록 저를 이끌었습니다 .
이제 저희가 어떻게 NC와 FKBC에 오게 되었는지 말씀드리겠습
니다 . 3년 전 , 저는 일찍 은퇴를 결정하고 랄리 , 덜행 지역으로 이
사하기로 했습니다 . 이사 온 후 , 처음 2년 동안 다른 교회에 정착
해서 열심히 봉사했습니다 . 교회 다닌지 6개월도 안되어 저는 여
러 리더쉽 직분을 맡게 되었는데 , 그 중 하나는 교회 재정을 담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 사역을 하는 동안 교회의 운영 구조가 점
점 더 불편하게 느껴졌고 , 결국 그 교회를 떠나기로 어려운 결정
www . fkbc . org
랄리제일한인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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