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의샘터2022 Spring Summer | Page 42

FKBC 로 우리 가족을 인도하신 하나님

Charles Moon 형제 ( 영어부 )
형제 자매님들께 따뜻함과 축복을 담아 인사드립니다 ! 제 이름 은 Charles Moon입니다 . 이 글을 통해 Living Hope Raleigh / FKBC의 새로운 멤버가 된 저의 가족을 소개하고 , 저의 신앙 간 증과 왜 저희 가족이 FKBC로 오게 되었는지 함께 나누고 싶습 니다 .
제 아내 김윤경과 저는 매튜 ( 28세 ), 다니엘 ( 25세 ), 미쉘 ( 17 ) 3명 의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 첫째와 둘째는 대학 졸업 후 독립했으 며 , 매튜는 맨하탄에 , 다니엘은 LA에 살고 있습니다 . 미쉘은 Panther Creek 고등학교 11학년 입니다 . 아이들은 모두 미국에서 태 어났습니다 .
제 아내와 제가 만나기 전까지는 저희는 매우 다른 삶을 살았고 하나님을 알게된 계기도 달랐지만 , 올해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 부로 맺어주신지 벌써 30년이 되었습니다 . 저는 1967년 서울에 서 태어나 1살 때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가 4살 때 미국으로 왔습 니다 . 아내도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 아내는 1988년 이화 여자 대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미국에 왔습니다 .
윤경은 5녀 중 막내로 , 믿지 않는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 아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 스스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끼고 본인의 의 지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 아내는 일요일 아침에 교회로 향할 때 , 가족들에게 “ 나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거에요 .” 라고 선 포하곤 했다고 합니다 . 장인 어른과 장모님 , 세 처형들 그리고 남 은 가족들도 나중에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
반면 저의 가족은 조부모님부터 믿음의 가정으로 일찍부터 신앙 심이 깊고 굳건했습니다 . 저의 가장 어렸을 때의 기억은 두 살 때 로 , 캐나다 토론토에서 교회 소풍을 갔던 일입니다 . 몇 년 후 , 부 모님은 캐나다를 떠나서 뉴욕으로 이사했습니다 . 부모님께서는 믿음이 매우 좋으셔서 한인 이민자를 위한 예배 장소가 필요하다 고 판단하셨고 , 퀸즈에 교회 두 곳을 개척하셨습니다 . 그 중 두 번 째 교회는 아직도 처음 세워졌던 퀸스의 아스토리아에 있습니다 . 저는 그 교회에서 자랐고 , 제 아내를 만났고 , 결혼도 그곳에서 했 습니다 . 저의 부친은 그곳에서 오랫동안 장로님으로 , 어머니께서 는 권사님으로 섬기셨습니다 .
아버지께서는 서울대학교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셔서 , 그 기술 덕분에 화이트칼라 일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 비교적 일찍 뉴욕 시 교외로 집을 사서 이사를 했습니다 . 비록 1,200 스퀘어피트 밖 에 안되는 작은 집이었지만 , 항상 저희 집에서 교회 모임을 했습 니다 . 어머니께서는 요리를 아주 잘하시지만 , 많은 사람들을 위 해 요리를 할 때는 형 , 누나 , 그리고 막내인 제가 도와야 했습니다 . 제 어린 시절은 어머니를 도와 모임을 준비하고 교인들을 접대 하던 기억으로 가득합니다 . 이런 경험들이 제가 요리를 직접하게 하고 더 중요한 것은 섬김에 대해 알도록 해주었습니다 .
믿음의 가정에 자라서 사람들은 제가 믿음이 좋았을거라 생각하 겠지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 저는 하나님을 믿었지만 하나님에 대 한 이해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분명하지 못했습니다 . 그 이유의 대부분은 언어 때문이었습니다 . 제가 다닌 교회는 아스토리아 퀸 스에 있었고 , 교회가 성장하면서 대부분의 성도들이 최근 이민자 여서 모든 예배와 행사는 한국어였습니다 . 주일학교도 한국어가 사용되었는데 최근 한국에서 온 아이가 대부분이었습니다 . 하지 만 저는 1살 때 이민을 와서 한국인이 하나도 없는 영어권 지역에 서 자라서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 그래서 의미 있게 복 음을 배울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 1980년대 중반에 비로소 EM 의 필요성을 교회 장로님들이 알게 되었지만 제는 이미 고등학교 를 졸업하고 난 후였습니다 . 저의 어린 믿음은 내가 좋은 사람이 고 다른 사람에게 선을 행하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실거라 믿었 고 하나님과 개인적 관계는 알지 못했습니다 .
저는 거의 모든 면에서 미국인이었고 심지어 한국계 미국인과도 사귀어 본 적도 없었습니다 . 하지만 놀랍게도 하나님은 제가 이 민 온지 얼마 안 된 한국 자매와 만나고 결혼하도록 계획하셨습 니다 . 아내를 만난 후 제 한국어는 늘었지만 , 여전히 한국어 설교 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은 아니었습니다 . 처음에는 어머니를 위 해 , 나중에는 아내를 위해 한국 교회를 다녔습니다 , 하지만 저의 신앙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은 한국어 예배는 더 참석하지 않겠 다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
그래서 , 약 8년 동안 , 제 아내는 저 없이 두 아들과 함께 한국 교 회에 다녔습니다 . 저희는 그 기간 동안 여러 번 이사를 했는데 , 이 사할 때 마다 아내는 새로운 교회를 찾아 교회 공동체의 충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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