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의 샘터 Soonsam 2019 Fall | Page 4

가을을 열며 가을을 믿어요 아가페 김지영 미국에서는 장거리 운전을 할 일이 꽤 많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도로를 달리다 보면 도로 만큼이나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하늘이 펼쳐집니다. 시야를 가리는 높은 건 물 없이 멀리 보이는 하늘은 다양한 표정을 가집니다. 먼 데 구름이 잔뜩 어두울 때에는 그곳에 비가 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햇빛이 내리 쬐고 맑은 하늘이 머리 위에 있을지라도 언젠가 먹구름 아래에 들어가면 여지 없이 비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런데 반대의 경우가 재미있습니다. 지금 도로를 달리는 우리 머리 위에는 먹구름이 가득하고 세찬 빗줄기가 쏟아지지 만 저 앞에 멀리 보이는 하늘은 쾌청한 데다 무지개까지 둥실 떠 있는 모습을 볼 때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이, 믿음이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칩니다. 비록 현재 나의 상황과 마음은 태양이 떠 있는지 의심스러운 어둑어둑한 비바 람 한 가운데일지라도 언젠가 이 비바람이 끝나고 푸른 하늘 흰 구름 밑 맑은 바람 부는 날이 오리라는 것을 믿으며 이 비 속을 달리는 것, 지금 뚫고 지나야 하는 이 구간이 무섭고 위험해 보이지만 반드시 끝이 있음을 알고 믿는 것 말입니다. 가을이 올 것임을 알고 믿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류에게 계절의 변화는, 오랜 경험을 통해 부동의 지식이 되었지만 아주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다음 계절이 오지 않을까봐 불안해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직 오지 않은 계절이 올 것임을 아는 것도 결국은 믿음의 일종이 아닐까요? 혹시 올 해에는 가을이 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한 가지, 인생의 다른 페이지, 다음 계절을 맞이하기 위해 꼭 기억해야 할 것, 지나가야 할 관문이 있습니다. 바로 지금 서 있는 이 구간을 안전하게 잘 돌파하는 것이지요. 지금 내가 지나는 곳이 세찬 빗줄기로 인해 앞도 잘 보이지 않 는, 위험한 도로 한복판이라면, 최대한 정신을 집중하고 다른 데 한눈을 팔지 않고 운전대를 똑바로 잡아야 합니다. 그리 고 이 때, 곧 이 상황이 끝난다는 것을 아는 것, 먼 데 하늘을 바라보는 일이 도움이 됩니다. 우리에게 가을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지금 이 여름이 어떠한 것이었든, 얼마나 뜨거웠든지 간에 가을은, 그리고 겨울과 봄이 옵니다. 다시 오시겠다 약속하신 주님의 그 날도 반드시 올 것입니다. 우리의 현재가 얼마나 힘겹든, 그것은 언젠가 끝이 날 것입니다. 이 끝은 한 가지의 의미만 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끝이든지 우리에게 모두 선한 것임도 우리는 알 고 있습니다. 때문에 인생의 비바람을 지날 때, 우리에게 이 비바람의 끝이 있음을, 새롭고 영원한 약속이 있는 땅이 있 음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그 시선이 우리가 갑자기 만나는 고난의 소용돌이 앞에서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그 길을 지나갈 수 있게 도울 수 있음 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반복되는 인생의 어떠한 계절 앞에서도 이 신실한 순환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함께, 인생이라는 여행길 안에서 만나게 될 어두움의 구간을 안전히 빠져 나가기를 이 여름의 끝자락에서 소망 합니다. 4 순례자의 샘터 www.soonsa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