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의 샘터 Soonsam 2018 Winter | Page 41

자로 3달 만에 모든 수속을 끝내고 2011년 3월에 미국으로 왔 합니다. 2016년 여름에 만난 한 시리아 가정을 시작으로 무슬 습니다. 워킹비자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도전하였지만 림 가정으로까지 사역의 지경이 넓어졌으며, 그 해 추수감사 하나님의 예비하심으로 3개월 만에 모든 절차를 마치게 되었 절에 시리아 및 무슬림 가정을 교회에 초대하여 함께 식사하 으니 참으로 절묘한 타이밍이었습니다. 며 교제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는 못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여러나라 사람들을 만나게 되 실천하는 삶 미국에 처음 오자마자 2년 3개월 남짓 뉴욕에서 직장생활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형제님이 원래 품고 있던 계획과 현실은 많이 달랐습니다. 그러던 때에 지인의 소개로 노스캐롤라이 나를 소개받았고, 또 한 번의 고심 끝에 이곳 랄리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었다며 네팔, 미얀마, 콩고, 르완다, 우간다, 소말리아, 아프카 니스탄, 시리아, 이라크, 탄자니아 등을 나열하시는 나홍렬 형 제님에게서 활기 넘치는 힘이 느껴졌습니다. 마치 필리핀 대 신에 미국을 택한 이유가 여러 민족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 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라는 고백이 실현되고 있다는 생각 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곳에서 다시 적응해가면서 정착하는게 쉽지만은 않았 앞으로의 바램 지만, 이재은 집사님의 도움으로 우리 교회를 소개받아 오게 본인의 사업에 전념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을 쪼개 주일날 까 되었고 비로소 이곳에서 뜻하는 바를 서서히 실천에 옮길 수 지도 쉬지않고 난민사역에 주력하시는 형제님과 옆에서 묵묵 있게 되었습니다. 형제님은 선교에 많은 비중을 두시는 최동 히 따르며 동역하는 자매님은 힘들다기 보다는 오히려 신앙 갑 목사님의 사역 방향에 많은 공감이 되었고, 이는 자매님과 의 활력소가 된다고 합니다. 자매님 또한 그때그때마다 도움 딸 예지의 교회 적응과 함께 우리 교회에 정착한 가장 중요한 이 필요한 영혼들을 묵묵히 섬기는 모습이 귀하게 느껴집니 이유였다고 합니다. 다. 현재 Cedar Point 예배에 오는 아이들이 3살부터 고등학 생까지 50-60명 정도가 됩니다. 장소가 협소한 관계로 최근 이와 함께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주님을 전해야 좀 더 넓은 예배장소로 옮기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기뻐하 할지 고민하며 기도로 간구하던 중 난민의 정착을 도와주는 시는 질적으로 양적으로 더 성장한 예배가 이루어 질 수 있도 비영리 기관을 알게 되었고 자원봉사자로 지원을 하게 되었습 록, 어른들만의 예배가 이루어지도록, 지금처럼 계속해서 섬 니다. 형제님이 비영리 기관에서 난민들의 직업을 찾아주는 겨나가기를 함께 기도해주셨으면 합니다. 자원봉사를 하다가, 어느 날 그곳에서 알게 된 난민을 도와주 기 위해 그가 사는 Cedar Point(현재 우리 교회에서 난민사역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을 하고 있는 곳)에 갔다가 노일환 집사님 내외분을 현장에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우연히 마주치기도 했습니다. 이후 노집사님 내외분이 2015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 년 11월에 Cedar Point에서 예배를 시작하셨고, 나홍렬 형제 님 가정은 2016년 1월부터 예배에 합류하면서 Cedar Point 난민사역에 본격적으로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지금까지 예배 봉사, ESL 베이비싯, 여러 난민 행사 등 사역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노집사님 내외분을 만나게 되 어 함께 사역에 동참하게 된 것이 큰 축복이며, 두 분의 헌신 과 겸손이 큰 귀감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노집사님 가정이 타 주로 이주하신 후로는 정용철 목사님과 함께 사역하게 된 것에도 감사를 드린다고 합니다. 또한 항상 격려해 주시는 최 동갑 목사님과 매주 함께 섬기는 스텝들, 항상 응원해주시는 목장 식구들 그리고 기도 동역자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고 www.fkbc.org 랄리제일한인침례교회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