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부흥운동, 1907년 평양 대부흥 보다 앞서 일어난, 한국
최초의 오순절적 체험이요, 한국 교회 부흥의 첫 시발점이라
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최후 마지막 순간까지 한 방울의 생수를…
펜윅은1933년 부인, 하인즈(한국이름: 하인수, Fammie
Hinds) 선교사와 사별한 후에도 끝까지 원산에서 사역하다
가, 2년 후인 1935년 12월 6일, 72세의 나이로 소천하여 부
인의 묘 옆에 묻혔습니다. 젊은 시절 복음을 들고 한국에 들
어와 46년간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한국을 무척 사랑해서
한국 땅에 자신의 육신을 묻었습니다.
비록, 많이 배우지 못하고 스스로를 찌그러진 깡통이라 여겼
지만, 한 모금의 영원한 생수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
도록 알고 있는 성도 한 사람을 불러, 자신의 마음을 나누며 하기 위해 한국에 온 펜윅은, 한국의 침례교를 세운 개척자
그에게 묻습니다. 가 되었고, 이후 수많은 침례교 선교사들이 한국에 선교를
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준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한국에 와
“하나님께서 우리 모임에 역사하고 계시지 않다는 것을 알 서 무려 13년 동안 현지인 지도자를 세우지 못했고, 도중에
고 있습니까? 제 눈에는 감격하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습 재정적인 문제나 현지인의 배신, 주변 사람들의 비난이나 모
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오직 한 가지 밖에 함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 모든 것들을 이겨 낼 수 있었
없습니다. 죄인들의 수가 아무리 많고, 그들이 아무리 악해 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다는 소명에 대한 확신 때
도 성령의 역사는 막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서로 미워하는 문이었습니다. 자신을 낮게 여기고, 타인을 낫게 여기는 겸
신자 두 사람만 있으면 하나님의 역사는 중단될 수 있습니 손함과 안정된 삶과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불굴의 개척자
다. 자 이제 이곳 신자들 중에서 누가 서로 미워하고 있는지 의 정신으로 끝까지 복음의 열정을 가지고 살았던 그의 삶
말씀해 주십시오.” 을 통해 우리의 부르심과 사명을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
기를 소망합니다.
이 이야기를 듣자 마자, 그 사람은 엎드려 울기 시작했습니
다. 바로 펜윅이 말한 그 사람이 바로 자신 이었기 때문이었
습니다. 펜윅은 그를 달래며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자신
이 미워하고 불편한 관계에 있던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
겠느냐 권면하였습니다. 이에 그는 하나님께 회개하고, 자신
의 마음에 미워했던 두 사람을 찾아가 용서를 구합니다. 이
용서와 화해를 시작으로, 소래 교회 전체 안에 서로가 서로
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하는, 놀라운 회개의 역사와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 부흥의 불길은 소래 마을뿐 아
니라, 이웃 마을로 번져 갔으며 성령의 불길이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심령이 새롭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혹자는
이 소래 교회의 성령의 역사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19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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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전도사님은 South-
Eastern 신학 대학원에서
선교학 Th.M. 과정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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