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의 샘터 Soonsam 2018 Spring | Page 24

간증 및 수필
다 . 그들은 방학의 일정부분을 봉사활동에 할애하고 있다 . 봉사활동 일은 2년 전 Katrina 피해로 무너진 집들을 보수하 는 작업이었다 . 한국에서 하는 막노동과 버금가는 일이었다 . 이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경력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시민으로서의 의무라고 생각하여 이 곳에 참여 한다 . 그래서 봉사활동은 대충의 시간 때우기가 아니라 혼 신의 힘을 다한 노동이었다 . New Orleans 는 미국에서 버 려진 땅이었다 . 연방정부와의 끊임없는 마찰로 재정적 지원 을 받지 못하고 , 이라크 침공으로 인해 국가 건설에 들어가 야 할 돈이 전쟁 비용에 들어가고 있었다 . 돈이 있는 사람들 은 대부분 다른 지역으로 떠났고 , 지금 New Orleans에 거 주하고 있는 주민들은 대부분 빈민층이었다 . 그들에게 도움 이 절실히 필요했다 .
[ 대학생 자원 봉사자들과 함께 ] 대하겠다고 장담을 했습니다 . 그런데 한국에서 시간은 하염 없이 흘러가 버렸습니다 . 새로운 일을 시작하였고 결혼도 하 고 아이도 낳아서 어느덧 가장이 되었습니다 . 약속은 잊은 지 오래되었고 친구들과의 연락은 끊겨서 그 때의 기억은 소 중한 추억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
젊은 날 품었던 열망이 바쁜 일상에 묻혀서 과거의 추억이 된다는 것은 너무나 아쉬운 일입니다 . 20대는 도전과 좌충우 돌의 연속이었다면 30대는 기존의 문화 , 형태를 빠르게 습득 하고 돈을 벌고 조직에서 인정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회사 원의 모습이었습니다 .
[ New Orleans 신문 ] 7월 어느 날 , 땀을 뻘뻘 흘려 가며 일을 마쳤을 때 집 주인 아 주머니가 고맙다면서 봉사자들에게 깊은 포옹을 하였다 . 그 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정말로 고맙다고 하였다 . 그 순간 , 나 도 이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내가 해야 될 일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 내가 이 곳에서 겪 었던 일들을 글로 써서 표현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New Orleans에 오지 않을까 , 굳이 봉사활동을 하지 않아도 사람 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 다 . 내가 만약 프로젝트를 이어 간다면 이 곳에서 겪었던 모 든 얘기를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 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 ======================================= 10년전에 이곳을 떠날 때 친구들과 약속을 하였습니다 . 다시 돌아오겠다고 , 그리고 그때 다시 만나서 신나게 맥주를 마시 자고 . 또한 Martial Project 2를 완성하여 많은 사람들을 초
10년만에 다시 오게 된 미국에서 저에게 달라진 모습이 있 습니다 . 하나님을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 커지게 되었습니다 . 우연한 계기로 방문하게 된 마하나임 모임을 통해서 제일한 인침례교회를 알게 되었고 그곳에서 소중한 분들의 은혜로 조금씩 신앙심을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 사실 10년전의 여행 을 통해 하나님이 저에게 손을 내밀어 주셨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 한달 전부터 가족 모두 잠들기 전에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 하루의 감사한 일과 경험에 대해서 . 사소하지 만 큰 힘이 되고 있는 것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
다시 길 위에 있는 기분입니다 . 10년전 자전거 페달을 밟으 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였다면 요즘은 하나님께 기도 를 드리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자문하곤 합니다 . 아직 잘 모 르지만 신앙에 조금씩 전진하듯이 , 저와 가정의 앞날에도 조 금씩 전진해 나아가고 싶습니다 .
24 순례자의 샘터 www . soomsam . 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