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의 샘터 2017 Spring | Page 42

가정탐방
사하였습니다 . 그때가 아마 최동갑 목사님께서 본 교회에 취 임하신 지 몇 달이 되지 않았을 때라고 하죠 . 가족 모두 함 께 가는 계획이었으나 기존에 하시던 이곳 태권도장을 이강 석 형제님께서 계속 운영해야 하는 돌발상황이 생겨 어쩔 수 없이 주말 부부가 되었습니다 . 힘든 점이 없다고는 할 수 없 었지만 주말마다 버지니아에 가셔서 청소며 설거지며 모든 집안일을 도와주는 너무나 자상한 남편이자 딸들이 해달라 는 것은 무엇이든 다 들어주는 딸바보인 남편이 있어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 또한 , 주 중에는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 없 이 조금 늦은 시간까지 교회사역을 할 수 있었습니다 . 노스 캐롤라이나와 버지니아를 힘들게 오고 가며 주일에는 꼭 가 족과 함께 예배를 드리시던 이강석 형제님께서 침례도 받던 날은 가족 모두를 울음바다로 만드는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 었습니다 .
이곳에서도 엄청난 사역을 하셨던 전도사님께서 버지니아 에서도 만만치 않은 사역을 하셨겠죠 . 목자 , 중보기도 사역 , 신방 사역 , 새 신자 사역 , 새 신자 교육 , 가정사역 . 이곳 본 교 회에서는 성경 말씀 공부로 믿음 생활을 다졌다고 한다면 버 지니아의 펠로우쉽 교회 ( Fellowship Church ) 에서는 기도로 더욱 성장하셨습니다 .
랄리제일한인침례교회에 다니실 때부터 주위 분들로부터 신학 공부를 해보라는 말을 듣기는 했으나 30 중반을 넘어 공부한다는 것은 어림없다며 가볍게 넘겼습니다 . 그러나 계
속해서 생기는 마음의 부담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전도사 님은 하나님께 확실한 사인을 보여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 그렇게 빨리 사인을 주실 줄이야 . 바로 그 주 주일 , 목사 사 모님께서 뜬금없이 신학 공부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의 를 하셨고 , 전도사님은 바로 원서를 제출하셨습니다 . 그 후 로도 불확실한 마음에 한번이 아닌 , 세 번의 신호를 더 달라 고 기도하였고 하나님께서는 매번 정확하게 보여주셨답니 다 . 하나님께서 전도사님의 성품을 잘 아시고 그에 맞는 주 님의 비전을 위해서 신학 공부의 길로 인도하셨고 전도사님 은 지금도 온라인 수업으로 신학 대학원 상담학 공부를 계 속 진행 중입니다 .
많은 교회사역과 신학 공부를 한꺼번에 하면서도 두 자녀를 거뜬히 양육하신 전도사님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해주 셨기에 가능하다고 합니다 . 학창시절 , 노력한 거에 비해 너 무나 큰 축복을 받았던 강은 ( Stephanie ) 이를 ‘ 하나님의 조작 사건 ’ 이라고 불렀다는 전도사님은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셔 서 모든 것이 잘되게 해주셨기에 그 모든 것을 주님께로 돌 리신다면서 전도사님 가정의 간증 중 하나로 말씀하십니다 . 전도사님 마음에 강은이를 선교사로 쓰임 받게 해달라는 소 원을 품게 해주시고 , 강은이에게는 대학교 수양회에서 선교 사의 소명을 주신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를 드린 전도사님은 다시 한번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모든 일에 감사 드렸습니 다 . 그렇다면 지금 어떤 선교사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을 까요 . 현재 강은이는 뉴욕의 브롱스라는 저소득층 지역의 고 등학교 영어 선생님입니다 . 공석은 하나였고 이미 그 자리 에 갈 사람이 잠정적으로 결정된 상태였으나 기도하며 주님 의 뜻을 기다렸던 학교였습니다 . 결정 나기 직전에 두 자리 로 변경되면서 강은이에게도 기회가 온 그 학교에서 단지 영어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상처받은 아이들의 영혼을 치유하면서 하나님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있습니다 .
채은 ( Adrian ) 이는 어릴 때부터 미술공부를 하고 싶어 했습 니다 . 전도사님의 웃는 모습을 쏙 빼닮은 채은이는 그 재능 도 물려받았나 봅니다 . 그러나 그쪽 분야에 대하여 잘 알고 계시는 전도사님은 채은이 안에 하나님의 자리가 없어질 것 이 우려되어 반대하시다가 결국 뒤늦게 10학년 때 허락하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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