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운 게
도둑질이란 말은 딱 나를 두고 하는 소리다.
태어나서 지금껏 잘 하는 거라곤 오직 하나 탁구뿐이기 때문
나 열심히 일했다. 그래서 사장의 신임도 얻었고 적당히 승진
도 하면서 돈도 모을 수 있었다.
이다. 아는 게 그것밖에 없으니 당연히 직업도 그 길로 갈 수밖 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늙어갈 줄 알았다. 공장이 부도난
에 없었다. 이렇게 말하면 혹시 탁구 선수 아니냐고 물을지도 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의 일이다. 13년의 공돌이 생
모르겠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그랬다. 초등학교 시절 우연히 활이 본의 아니게 끝난 것이다. 조금만 알아봤다면 유사한 업
시작한 탁구는 나름 재주가 있었던지 전국대회에서 입상도 하 종으로의 이직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그러고 싶
고 에이스 대접도 받을 만큼 전도유망했던 게 사실. 그러나 그 지 않았다. 툭 하면 철야를 일삼는 생활에 이력이 난 탓이었다.
건 고등학교 때까지의 이야기다. 철없던 고등학생 시절, 불량 많은 고민을 했다. 내가 잘 하는 거라곤 탁구뿐이었다. 답은 나
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용서 받지 못할 사건을 저질렀고 그 와 있었다. 몇 달간의 시장 조사 끝에 탁구장을 열었다. 그동안
일로 내 탁구 선수로서의 커리어는 끝이 났다. 모아둔 돈에 부모님의 지원을 받아 연 탁구장은 생각보다 힘든
처음 탁구를 그만 두게 됐을 때만 해도 속이 시원했다. 더
이상 하루에 10시간씩 운동을 하지 않아도 됐고 코치들의 욕
일이었다. 일 자체로 놓고 본다면 힘들 게 없었다. 손님들 오면
공과 채를 내주고 시간 계산만 하는 되는 일이었으니까.
설과 체벌에 시달리지 않아도 됐으니까. 그러나 그건 오산이었 힘든 건 수입이 신통치 않다는 점이었다. 알겠지만 요즘은
다. 초중고 내내 탁구만 쳤으니 공부랑은 거리가 멀었고 그 결 탁구를 치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그나마 방학 때면 근처
과 대학은 꿈도 못 꿀 처지였던 것. 서둘러 군대를 다녀왔고 막 초등학교 아이들이 레슨을 받기 위해 그나마 벌이가 되지만
상 사회에 나와 보니 할 일이 없었다. 다행히 아버지의 소개로 지금처럼 학기 중엔 레슨 받는 아이들도 거의 없어서 월세에
다니게 된 주물 공장이 아니었다면 난 형편없는 인간이 되었을 전기세, 소모품 구입 등등 처리하고 나면 막상 내게 떨어지는
지도 모른다. 군대를 다녀와서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나는 꽤 돈은 그야말로 푼돈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 상황을 타개하
SPARK November 2016 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