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1919년 9월 17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제6회 임시의정원 기념사진.
타국에 세운
대한민국 최초의 정부 이야기
임시정부 수립 대표 의정 의원 29인
1919년 3월 12일 늦은 밤, 중국 상해의
한 허름한 집에 우리나라의 각 지역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들이 모였다. 그들의 회의는 한 달
가까이 지속됐다. 4월 10일 밤 10시, 29인의
대표로 구성된 임시의정원이 합의된다.
1919년 4월 13일, 그날의 궤적을 더듬어봤다.
의정 의원 29명이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 공화
정부를 탄생시켰다.
by 김 지 연
7개의 파벌 600,000원의 현상금 29인의 의원
대한민국임시정부도 사람 사는 곳인지라 파벌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석 김구 선생의 당시 현상금은 상해 임시정부 수립 당시 참여 의정 의원 29명은
7개나 형성됐다. 임시정부 내부의 패권을 잡기 위한 600,000원 이었다. 현재 가치로는 약 200억 원 김대지, 김동삼, 김철, 남형우, 백남칠, 선우혁, 손정도,
파벌 싸움을 본 장준하 선생은 “이 임시정부 청사에 정도다. 신석우, 신익희, 신철, 신채호, 여운홍, 여운형, 이광,
폭탄을 던지고 싶다”고까지 말했다고 한다.
이광수, 이영근, 이동녕, 이시영, 이회영, 조동진,
3층짜리 건물 조동호, 조성환, 조소앙, 조완구, 진희창, 최근우,
27년의 역사 상해임시정부 청사는 3층짜리 붉은 벽돌 건물이다. 한진교, 현순, 현장운이다.
3·1운동 직후인 1919년 4월 13일부터 중국 상해에서 1층은 부엌과 회의실, 2층은 집무실과 침실, 3층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 선포했다. 임시정부는 임시정부 요인 숙소와 전시실이 마련돼 있다.
1945년 8월 15일까지 27년간 존재했다.
306번지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유적지를 찾는다면
8번의 이사 상해시 마당로 306번지로 가면 된다. 택시 기사에게
4월 10일에 만들어진 이름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일제의 추적을 피해 근거지를 주소를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엉뚱한 곳에 내려주는
‘대한민국’ 국호가 처음 만들어진 날은 1919년 8번 옮겼다. 상해를 시작으로 항주 → 진강 → 장사 경우가 종종 있다고.
4월 10일 임시정부의 첫 임시의정원 회의에서다. → 광주 → 유주 → 기강 → 중경으로 이전했다.
당시 여운형 선생은 ‘대한’이라는 이름으로 나라가
40,000,000원의 채권
망했는데 또 쓸 필요가 있느냐고 했다. 그러자 79년만의 재회 임시정부는 독립운동 자금 마련을 위해 채권을 발행
신석우 선생이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다시 김구 선생의 수기에서 수차례 언급됐으나 멸실된 했는데 이를 ‘대한민국원년 독립공채’라고 한다. 채권
흥해보자”라고 하자 다수가 공감해 ‘대한민국’으로 것으로 알려졌던 중국 광주임시정부 청사가 79년 발행액을 4천만 원으로 결의했으며, 이자는 연 5%로,
결정되었다고. 만인 올해 발견됐다. 현재는 가정집으로 쓰이고 있다. 독립 후 30년 이내에 수시로 상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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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