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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회

2023 년 1 월 20 일 - 2023 년 1 월 26 일 A-11

불매운동과 의식있는 자본주의 ( conscious capitalism )

< 홍성호 기자 >
흔히 정치 의견은 기업에 지뢰밭으로 여겨 졌고 무조건 엮이지 않고 피하는 게 상책이라 는 생각이 오래 지배해 왔다 . 특히 과거에는 기업들이 신중하게 행동하면 얼마든지 정치적인 사안에 휘말리지 않고 , 정 치적 색깔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실속을 차릴 수 있었다 . 과거에는 문화전쟁이라는 말도 없 었고 사회 이슈에 명확한 의견을 표출하는 것 은 정신나간 짓으로 여겨졌다 . 지금부터 30 여 년 전인 1990 년 파타고니아 ( 아웃도어 의류와 물품 판매 회사 ) 가 가족계획연맹 ( Planned Parenthood ) 에 기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분노한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이 곧바로 행동 에 나섰다 . 가족계획연맹은 안전한 낙태 수술을 지원하 는 비영리단체로 낙태에 반대하는 종교 단체 를 비롯한 보수주의 단체들과 오랜 앙숙 관계 에 있는 단체다 . 불매 운동을 시작하고 , 매장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겠다고 협박했고 파 타고니아 콜센터에는 정상적인 업무가 불가 능할 정도로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 여느 기 업이라면 성난 소비자들의 화를 누그러뜨리 려 했을 것이다 . 그러나 파타고니아의 대응은 의외였는데 콜센터 직원들에게 항의 전화에 대해 답하는 메시지를 내렸다 . “ 고객님 , 소중 한 의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아울러 저희는 고객님께 이런 전화가 올 때마다 가족계획연 맹에 전화 한 통당 5 달러를 추가로 기부하기 로 방침을 정했다는 점을 알려드립니다 .” 이렇게 대응하자 빗발치던 항의 전화가 뚝 끊겼다 . 그리고 불매운동은 적어도 매출 데이 터에 눈에 띌 만한 변화가 감지되지 않았다 . 파타고니아는 그 후 꾸준히 성장을 계속했다 .
소비자는 기업이 자신의 편이 되길 원해 그런데 오늘날은 달라졌다 . 어느 쪽을 편들 든 이로울 것이 없는 대단히 민감한 주제를 기업들이 못 본 척 혹은 모른 척 넘어가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 기업의 적극적인 행동과 연 대를 요구하는 소비자들도 전보다 많아졌다 . 이른바 의식있는 자본주의 ( conscious capitalism ) 의 부상과 함께 등장한 젊은 소비 자들은 소비자의 돈을 원하는 기업이라면 , 소 비자가 중시하는 가치를 공유해야 한다고 생 각한다 . 이것이 정치적 양극화를 깊게 만드는 역할을 일정 부분 담당했다 .
신발 회사 뉴밸런스는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 ( TPP ) 에 관한 트럼프 대통령의 견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가 곧바로 거센 불매운동 에 직면하자 발언을 철회했다 . 커피 회사 블 랙라이플은 트럼프 지지자들이 애호하는 커 피 브랜드로 자리매김하자 오히려 성공을 거 뒀다 . 필요한 가치를 위해 진행하는 상품 캠 페인도 정치적 딱지가 붙어버리면 진행하기 어렵게 됐다 . 침묵으로 일관하며 논란이 잠잠해지길 기다 리는 전략도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 가 만히 있다가 자칫 기존의 적폐와 한통속이라 는 낙인이 찍힐지도 모른다 . 그래도 기업이라 면 그저 상품과 서비스를 더 많이 팔고 싶지 스캔들로 신문 1 면을 장식하기는 싫다 . 문제가 불거지면 대부분 경영자는 재빨리 여론을 살펴 다수가 지지하는 쪽을 파악하고 누구의 심기도 건들지 않는 최대한 무미건조 한 성명을 발표해 이를 무마하는 전략을 택한 다 .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제 그런 시대는 갔 고 어떤 문제가 터졌을 때 ‘ 피해자를 위해 기 도한다 ’ 는 하나 마나 한 말만 하고 실제로는 아무것도 안 하는 기업은 이제는 다 알고 있 다 . 목소리를 내기 두려워하는 회사들이 오히려 지금 가장 큰 문제라고 소비자들은 생각한다 . 민감한 주제에 관해 몸을 사리는 게 상책이 라는 통념이 잘못됐다는 걸 여러 기업들의 사 례가 직접 보여주고 있다 . 파타고니아는 아웃 도어 의류 , 장비를 만들어 파는 기업으로 사 회 변혁에 필요한 일이라면 정치적으로 민감 한 사안이라도 과감하게 발언하고 행동에 나 섰다 . 때론 괴짜같이 보이는 행동도 서슴지 않고 하기도 했다 . 이는 일찌감치 깨달은 바가 있었기에 가능 했던 일이다 . 즉 대부분 기업은 소비자를 잃 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불매운동의 ‘ 불 ’ 자 만 들어도 화들짝 놀라 자세를 낮추지만 실은 그런 위협이 대개 과장된 경우가 많다 . 소비 자가 돈 주고 사고 싶은 좋은 상품을 만들어 내는 브랜드는 불매운동 위협에 흔들리지 않 는다 . 불매운동 때문에 기업이 문을 닫게 되 는 일은 거의 드물다 . 오히려 불매운동 뉴스 가 공짜 광고 효과를 내기도 하는 만큼 두려 워할 일이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 그래서 파 타고니아는 자기 브랜드를 정치적인 목소리 를 적극적으로 내는 플랫폼으로 삼았다 . 그
래서 혹자는 파타고니아가 사기업과 NGO 의 중간 어디쯤 자리잡고 있다고 평가한다 . 파타고니아는 이윤을 추구하는 사기업이 분 명하지만 기업을 통해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영향을 주려는 것도 맞 다 . 불매운동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
파타고니아 효과 예전에 파타고니아는 주로 환경 문제에 관 심을 두고 다양한 캠페인을 벌이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돈을 댔다 . 1985 년 , 파타고니아는 전체 이윤의 10 % 를 환경보호 단체에 기부하기 시작했다 . 이후 기부 금액을 이윤의 10 % 에서 총매출의 1 % 로 상향했다 . 2018 년엔 트럼프 대통령이 송유 관을 짓고 석유 등 지하자원을 탐사하기 위 해 유타 주의 자연보호구역을 축소하겠다고 발표하자 대통령을 고소했다 . 불필요한 소비 도 환경을 파괴하는 원인 가운데 하나다 . 파 타고니아는 자사 제품을 많이 사지 말아 달라 는 광고를 내보기도 한다 . 과소비를 줄이자는 캠페인의 일환이었다 . 또 기업의 로고가 박힌 단체복도 친환경 기업에만 맞춰주겠다고 발 표했다 . 단체복 사업은 의류 브랜드에 적잖은 돈벌이가 되고 홍보 효과도 작지 않지만 파타 고니아의 결정은 거침이 없었다 . 이렇게 남들 다하는 사업에서는 발을 뺀 대 신 파타고니아는 남들이 최대한 관여하지 않 으려는 정치 사회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목소 리를 냈다 . 지난해 파타고니아는 페이스북에서 모든 광 고를 철수했다 . 페이스북이 혐오를 부추기는 거짓말 , 가짜뉴스를 걸러내지 못하고 위험한 주장을 방치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 이어 지난 해 대선을 앞두고 자사 티셔츠 태그에 “ 정치 꾼들을 투표로 몰아내자 ( Vote the Assholes Out )” 는 문구를 새겨 넣었다 . 몇 달 전에는 조 지아 주에서 투표권을 제한하는 법안 개정에 항의하기 위해 100 만 달러를 기부했다 . 여기에 다른 기업의 CEO 들을 상대로 뻔한 성명만 내지 말고 실제 행동에 나서자고 촉구 하는 공개서한까지 띄우자 , 보수주의자들은 파타고니아에 또 한 번 발끈했다 . 트위터에는 의류 기업이 사업에나 집중할 것이지 왜 정치 적인 사안에 자꾸 끼어드냐며 보이콧을 통해 파타고니아를 파산시키자는 글도 올라왔다 .
그러나 파타고니아는 파산을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어 보인다 . 공개 기업이 아니라 정확 한 재무제표는 알 수 없지만 , 파타고니아의 연 매출은 10 억 달러가 넘는다 . 반세기 가까 운 파타고니아 역사에서 논쟁적인 이슈에 휘 말려 매출이 실제로 눈에 띄게 줄어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 현재 파타고니아는 미국 내 19 개 주와 수도 워싱턴 DC 에서 36 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 전 세계 2,000 여 개 넘는 소매점에서도 파타고 니아 제품을 살 수 있다 . 심지어 파타고니아는 이런 문제로 고객을 조금 잃더라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 떠나는 고 객보다 더 많은 고객이 새로 들어오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
시대의 보편 가치가 좌우 기업의 브랜드를 걸고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다보면 피해를 감수해야 할 때도 있다 . 조지아 주 투표법에 반대하고 나선 코카 콜라나 델타 항공 등 조지아 주의 터줏대 감 같은 기업도 전면적인 불매운동의 대상 이 되었다 . 칙필레이 ( Chick-fil-A ) 나 큐릭 ( Keurig ) 커피 등은 논쟁적인 사안에서 한쪽 편에 돈을 기부하거나 광고를 냈다가 뭇매를 맞기도 했다 . 그렇다고 정치적인 견해가 다르 다고 일방적으로 기업을 향해 비난을 퍼붓는 것은 아니다 . 세계 최대의 스포츠 브랜드 나 이키 ( Nike ) 는 3 년 전 NFL 쿼터백 출신 콜 린 캐퍼닉을 광고 모델로 썼다 . 캐퍼닉은 구조적인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의 미로 경기 전 미국 국가가 흘러나올 때 가슴 에 손을 얹는 대신 무릎을 꿇는 행위를 처음 시작해 NFL 에서 퇴출된 저항의 상징이 된 인물이다 . 광고 카피도 “ 그것이 모든 것을 희 생한다는 의미일지라도 신념을 가져라 ( Believe in something . Even if it means sacrificing everything )” 였다 . 나이키를 향한 맹렬 한 비난이 폭주했고 나이키 제품을 쓰레기통 에 버리거나 불태우는 동영상과 사진이 쉴 새 없이 소셜미디어에 올라왔다 . 그런데 나이키 의 실제 매출은 10 % 늘어난 94 억 달러를 기록 해 예상을 웃도는 대박을 터트렸다 . 파타고니아의 성공 비결은 오랫동안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일관적인 메시지를 던져온 점 , 질 좋은 제품을 바탕으로 쌓은 브랜드 , 충 성심 강한 고객층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