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인사
신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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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0년 초반, 흑백갈등이 극
한으로 치닫고 있을때 케네
디 대통령이 당선되고 자유와
평등을 갈망하던 흑인들에게 인
권법안이 의회를 통과하고 동양
계 황색인종을 포함한 새 이민법
(1965년 개정 이민법)이 발효되
면서 미국은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었다.
한편으로, 당시 한국의 경제상태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
는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국가 시책에 의해 경제 개발의 일
환으로 해외 무역에 눈을 돌려 먼저 선택된 상품이 가발 산
업이었다.
이민법의 통과 이면에는 흑백갈등이 최악에 달하게 되자 흑
과 백 사이에 황색인종을 갈등의 해소책으로 받아들여 어려
운 난국을 타게 하고자 동양인에 대한 이민 쿼터가 열리게
되었고, 가난에 쪼들려 있던 한국인 이민이 본격화 될 수 있
었다. 70년대에서 2000년 사이 이민 한인은 가족을 포함 200
여만명이 육박하였고, 여러 분야에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
지만 그중에서도 한인 뷰티 업계가 발전하여 도소매를 비롯
헤어 산업체에 이르기까지 1500여 개의 대소 업체가 미주
전역에 분포되었다.
인간은 누구나 아름다움을 갖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인권
법안의 발효와 함께 흑인 사회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백인사
회와 동등한 사회를 이루어 나가려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을
때 한인 뷰티업은 흑인 사회 속에 자리 잡기 시작하였고 뷰
티사업으로 승승장구 할 수 있었다.
이렇게 흑인 사회와 함께 동반성장하여 오던 산업이 현재는
전반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활기 차던 사업이 한줌
의 사업으로 변하고 있다.
10여전 전부터 중동의 상인들이 한인 뷰티산업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 오는가 했더니 이제는 온라인 시장의 성장에
따라 세계의 기존 소매 상권들이 몰락의 기로에 서 있는 대
흐름 속에서 뷰티 서플라이업도 예외일 수는 없게 되었다.
자업자득이라고나 할까? 설마 설마 하던 것이 사실이 되었
다. 사업이 승승장구할 때 사업의 위험신호를 바라보지 않
고 개인의 치부에만 신경들을 쓰고 있었다.
사업의 질서 체계화에 대한 연구와 장차 일어날 사태에 대
한 교육 등은 멸시하고 상업상 도의에 벗어나는 행동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각자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여 협동의
식을 배타하고 타협을 모르는 장사꾼으로 전락해 있었기에
현실을 타개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뒤늦게나마 뷰티산업에 협동조합이 만들
어졌다는 점이다. 부디 새로 출범한 협동조합을 통해 기사
회생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서로가 협동하여 백년은 버텨
나갈 수 있는 민족사업으로 함께 사는 사업이 되기를 새해
를 맞으며 소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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