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칼럼
“코스모비즈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가 밝았다. 무술년 ‘황금 개띠'의 해다. 12간지를 사
용하는 중국과 한국은 노란색 개를 주제로 한 온갖 마
케팅 판촉물을 쏟아내고 연하장 카드까지 황금색 개로
장식되어 판매되고 있다. 매해를 12가지 동물로 구분하
는 것까지는 이해하겠는데, ‘개띠면 개띠지 황금 개띠
는 또 뭐냐?”는 의문도 생긴다. 과연 그런 것들이 의미
가 있는 것일까?
12간지는 주로 사주 역학의 공식을 풀 때 사용되는데 흙
(土)은 5행과 직결된 5방색의 가운데에서 중심을 의미
하는 노란색 ‘황'을 뜻한다. 따라서 무술년의 ‘무(戊)'는
천지 간지 5행의 흙에 속하는 해로서 60년마다 한 번씩
노란빛과 만나 황금 개띠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게 과연 의미가 있는 것들일까? 왜 옛사람
들은 하필 우주를 물, 나무, 불, 흙, 쇠라는 5대 원소로 나
누고 색깔도 파랑, 빨강, 노랑, 하양, 깜장 5방색을 정한
것일까? 소리도 다섯 가지로 궁, 상, 각, 치, 우로 나뉘었
고, 5일마다 장이 서면서 실제 1주일은 5일이었던 적도
있다. 이 모든 것의 정답은 물론 그것을 정한 사람들의
마음이다. 그렇다고 이런 우주 만물의 정의는 동양인들
사이에서만 내려졌던 것이 아니다. 서양인들은 7을 만
수로 여기고, 7을 우주 원소로 구분하였다. 그래서 눈으
로 보이는 모든 것의 색도 빨, 주, 노, 초, 파, 남, 보 7가
지로 구분하였고, 소리 역시 도, 레, 미, 파, 솔, 라, 시 일
곱 가지로 구분했다. 일주일이 7일인 것도 같은 원리다.
그렇다면 그 이전의 문명은 어떠했을까? 동양이 5를, 서
양이 7을 우주 만물의 단위로 정하기 전에는 동서가 동
시에 샤머니즘의 원리로 작용한 3의 수를 단위로 삼았
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는 삼세판을 외친다. 야구도 3번
스트라이크를 맞으면 끝이 나는데 무엇이든 3번하고 나
면 승부가 결정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옛
날이야기의 주인공 여우의 꼬리가 9개이고 구미호가 3
번 고개를 넘으면 여자로 변신한다는 줄거리가 만들어
지게 된 것이다. 결국, 3은 변화를 의미하고 3번의 변화
가 3번 반복하여 9번 변하면, 변화가 완성된다 하여 9를
완성 수라 하였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숫자는 무엇일까? 디지털 시대로 일
컬어지는 오늘날의 수는 0과 1밖에 없는 2개의 숫자다.
우주가 다시 하늘과 땅, 음과 양, 음극과 양극으로 나누
어지고 합쳐짐을 반복하면서 색과 소리는 수백, 수천
만개로 확장해 버리고, 동시에 흑과 백으로 단순이 구
분되는 양면적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2로 만들어지는 관계의
수는 매우 단순하다. 나
와 너, 나와 땅, 나와 하
늘로 나를 선택하면 나 스스로가 우주의 중심이 되어
버린다. 다시말해, 있고 없고, 하고 안 하고, 이기고 지
고 등 모든 것이 직접적이고 결론적인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새해 첫날부터 복잡한 숫자를 꺼내 든 것은 우리가 소
속된 작은 사회에서 나의 존재는 우연이 아닐지 모르기
때문이고, 우리 주위 사람이나 회사의 존재 역시 우리
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가치를 내포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어서다. 이번 달 잡지의 편
집을 마치기 몇 시간 전에 메시지 하나가 들어왔다. 어
느 지역에서 작은 뷰티서플라이를 운영하시던 분이 스
스로 목숨을 끊으셨다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메시지
를 보는 순간 온몸에 통증이 느껴질 만큼 모든 신경세
포가 울부짖음을 느꼈다.
나는 그분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도 모른다. 하지만 느낄 수 있는 동질감은 분명하다. 그
분도 작은 뷰티서플라이를 운영하고, 나도 작은 뷰티서
플라이를 운영하고 있기에 깊은 동질감을 느끼는 것 같
다. 창고에서 라면 끓여 먹다가 손님이 와서 식고 부픈
라면을 뒤늦게 그분도 나처럼 드셔 보았을 테고, 텅 빈
가게와 주차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비슷한 좌절감에 빠
져보기도 했을 테니 말이다.
색이 하나가 아니고, 소리의 음도 하나가 아니듯 우리
는 그렇게 5색이든 7색이든 하나씩의 색으로 모여 한
줄기 빛으로 한길을 동행해 왔다. 나와 너 중에 ‘너'였
던 분이고, 있고 없고에서 없고의 운명을 택한 동행자
였던 것이다. 내가 있으려면 ‘너'였던 그분이 있어야 하
고, 바로 ‘너'가 있기에 내가 있을 수 있다는 이 단순한
사실을 어찌 그렇게 복잡한 숫자놀이 속에서나 찾게 되
는 것인지?
내가 있기 위해 그 자리에 계셔야 하는 “여러분"이 바로
내가 맞이하는 새해의 복이고, 새해를 맞이해 함께 변화
를 완성해 가려는 내가 있기에 여러분이 받으시는 새해
의 복이 되시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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