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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악 [실:수]
수필 최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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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뿐만이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늘 부정적으로만 실수를 바라보
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막상 실수를 저지른 그 상황이 닥치게 되면 사람들은 실수의 특
성을 잊고 그 상황이 주게 될 결과에만 집중한다. 실수를 바라보는 ‘흑백논리’가 가동되
는 것이다.
‘…없다’
실수를 좋은 실수, 혹은 나쁜 실수로 인식하는 이분법적인 사고는 개개인이 실수를 대
아무리 가방을 헤집어보고 애꿎은 책들을 들춰보아도 없었다. 내 정리폴더가. 시험당
하는 마음가짐에서 비롯된다. 실수도 결국은 성장의 발판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은 내일, 현재 시각은 오후 10시. 촉박한 시간, 넓은 범위 때문에 한 장이라도 더 들
사실이다. 사람들이 ‘실수’라는 이 발판을 밟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 이유는 다른 ‘성장의
춰보고자 저녁 먹고 가라는 엄마의 부탁도 마다한 채 사과 하나만 베어 문 채 독서실로
발판들’보다 개인이 부담 해야 하는 몫이 크기 때문인데, 나는 실수라는 발판이 ‘기회’로
의 발걸음을 재촉했던 나였다.
표현되기 보다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기회는 쉽게 오
그런데 이런 내 ‘희생’이 모두 물거품으로 변해버리는 상황은 독서실에 도착한 지 채
지 않는다. 모두에게나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는 마치 실수에게 ‘특별함’ 을 부여하는
1분이 지나지 않아 생기고 말았다. 투덜투덜 짜증을 내며 관리인에게 외출권을 받은 나
것 같은데, 하루가 멀다 하고 저지르는 실수는 더 이상 내게 특별한 의미가 아닐 수 밖
는 그렇게, 책상 위에 있을 내 정리폴더를 찾아 집으로의 힘없는 걸음을 옮겼다. 이미
에 없다. 그러다 보니 실수를 기회로 인식하는 것 자체에서 오류가 생기고 공감을 이끌
10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는 손목시계가 원망스러울 뿐이었고, 밤을 새워도 못 끝낼 거
어 내지 못하다 보니 실수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만약 실수를 특
대한 시험범위 앞에 눌려버린 내 점수와 점점 조여오는 시간의 압박 때문인지 뛰고 싶
별한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하게 되면 ‘특별함’이 주는 부담감이 덜해진다.
은 생각마저도 없었다. 교과서와 참고서로 가득한 무거운 가방을 짊어 매고 더운 밤공
실수는 당연히 좋지 않다. 계속되면 습관이다. 그리고 짜증을 준다. 그러나 짜증’만’ 주
기를 들이 마시며 터덜터덜 걸어온 길을 다시 되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까마득했지
는 것은 아니며 나’만’ 저지르는 것도 아니다. 실수에 대한 현명한 대응은 적당한 짜증과
만 다른 방법이 있으랴. 내 불찰 덕분에 그나마 시험 전날에 ‘운동’할 수 있게 되었는데.
다른 긍정적인 관점에서 상황을 보는 것이다. 인생은 실수의 거미줄이기 때문에 실수가
약 4주 동안 매일매일 독서실과 집 사이를 오가며 시험을 준비해온 나는 벌써 이번
줄어들 수는 있겠지만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실수가 계속 될 것을 알기에 우리는 ‘다
주에만 세 번째로 꼭 중요한 물건을 집에 두고 왔다. 화요일에는 수학 교과서, 수요일에
음에는’ 이라는 희망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는 필통, 그리고 일요일인 오늘은 요약물들이 다 들어있는 정리 폴더. 아빠는 늘 말씀하
셨다. 처음 한두 번은 실수이겠지만 세 번째부터는 습관이라고. 작은 실수 한번이 또 다
현관문을 급하게 열고 들어가 허겁지겁 책상으로 달려가니 역시, 가방에 넣어지기만을
른 실수를 낳고, 이가 반복되다 보니 요 근래에 생긴 내 ‘습관’만 해도 짐작컨대 4개는
기다리던 그 자세 그자리 그대로 놓여있는 내 요약물 폴더가 보인다. 보자마자 여태까지
될 것 같다.
나던 짜증이 눈 녹듯 사라진다. 없어졌으면, 어디에 흘렸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덜해
당장 시험이 내일인데 괜히 쓸데없는 시간만 낭비하는 것 같아 괜한 스트레스가 머
졌기 때문이리라. 좋아하는 사람이 너무 밉다가도 문자만 오면 그런 마음이 스르르 사라
릿속을 가득 채웠다. 애써 긍정적으로 ‘괜찮다, 괜찮다’ 생각하며 관자놀이 부근을 꾹꾹
지듯, 실수 때문에 짜증이 확 올랐던 것은 맞지만 폴더를 보는 순간 안도감과 다행이라
누르면서 집 쪽으로의 걸음을 재촉했다.
는 마음이 나를 가득 채운다.
‘으…’
생각할수록 머리가 너무 아파와서 결국엔 옅은 신음소리를 내며 인도에 구부려 앉았
어떻게 보면 하나의 인격체 같은 실수. 좋은 면도 있고 싫은 면도 있는데, 싫은 면부터
다. 이런 상황이 닥칠 때마다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생각이 있다—왜 나한테만 이
보이다가 결국엔 날 안심시키기까지 할 정도로 내 마음을 좌지우지할 줄 아는 녀석이
런 나쁜 일이 연달아서 생기는 걸까. 표면적으로 봤을 때는 이기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
다. 나라고 실수 하나 못 다룰까, 인간관계에서 하듯 실수를 살살 구슬리다 보면 결국은
만, 알고 보면 전혀 틀린 생각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실수는 아주 흔하게 존재하기 때
내 편으로,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문에 스트레스 받을 필요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
는 실수하는 자신을 용납하지 못해서다.
밖은 여전히 덥다. 시험기간에 운동할 수 있는 이 황금 같은 기회를 마련해준 실수에
삶과 실수는 실과 바늘처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필연관계에 있다. 살면서 실수를
게 무한한 감사를 느끼며 행여나 폴더에서 종이라도 떨어지는 ‘실수’라도 범할까, 조심
단 한 번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실수의 ‘특성’을 이해하며
조심 품에 안고 나는 다시 독서실로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을 앞장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