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시 시선을 원상태로 옮겼다. 그녀가 없다고 생각해야 했다. 뇌와
근육이 따로 움직이는 것은 바로 이런 걸까. 나의 눈은 다시 그녀에게도 돌
아갔다. 그녀는 피곤한 듯 늘어지고 바텐더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하루 잘 보냈어요?”
“그럼요.”
“아, 난 오늘 너무 피곤하다.”
그녀의 목소리는 가라앉을 데로 가라 앉아서 갈라졌다. 한숨과 함께 내뱉
은 그녀의 짧은 말들은 내 귀마저 그녀에게 집중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야 내가 그녀를 보고 있었다는 것을
인식했다. 우리에 눈이 마주치기 전에 나는 내 눈을 내리깔았다.
앗, 실수.
나는 내 머리를 쥐어박고 싶었다. 그녀가 나를 알아챘을까? 만약 알아챘
다면, 내 시선을 느꼈다면, 어설프게 피한 나를 뭐라고 생각했을까? 머저리
처럼 보이진 않았을까? 당연히 찌질하게 보였겠지. 이렇게 기회를 회피해
버리는 나에게는 남자다운 면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던 것인가?
아,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
나는 한참을 구시렁거리며 나를 꾸짖다, 그것마저 바보같이 느껴져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무슨 생각이었을까. 나는 고개를 다시 올렸다. 그리고 그
렇게, 두 쌍의 눈은 마주쳤다. 우리(감히 ‘우리’라고 부른다)는 일정한 시간
동안 서로를 놓아주지 않았다. 단 한 마디도 섞지 않은 우리가, 단 한 번도
부딪혀보지 않은 서로에게 낯선 존재인 우리가, 마주친 시선 한 번에 그렇
게 친밀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그렇게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나에게 그
녀는 아름다웠고, 그 외에 것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한 순간만
이라도 더 그녀를 내 기억 속에 집어넣고 싶었다는 것뿐이었다. 그녀와 눈
이 마주쳤을 때 내 심장은 멎어버렸고, 살짝 보인 그녀의 미소에 내 심장은
작동할 생각 조차 하지 않았다. 마치 우리의 시선이 흩어지면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처럼, 나는 흔들리는 내 눈동자를 그녀에게 고정시켰다.
딸랑문고리에 걸려있는 종소리와 함께 머리가 벗겨진 몇 명의 남자들이 웃으
며 걸어 들어왔다. 우리는 마치 은밀한 비밀을 말하고 있던 것처럼 종소리와
함께 서로의 시선을 뿌리쳤다. 나는 옆에 놓인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괜히
시간을 체크했다.
21:39.
시간을 본 뒤 내 눈에는 스크린에 있는 우리 가족사진이 들어왔다. 예쁜 우
리 아내와 포동포동한 우리 딸. 우리 아내는 딸에게 꼭 붙어 볼에다 뽀뽀를
하며 셀카를 찍었고, 곧바로 내 스크린에 저장을 해 놓았다. 바꾸면 죽는다는
무서운 경고를 날리면서 말이다.
나는 핸드폰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나는 이러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이
렇게 예쁜 아내와 딸을 두고 지금 와서 흔들리면 안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또, 앞에 있는 여자에게 관심을 주고 있었다.
관심만 주는 것이다.
관심만 주는 건 괜찮지 않을까?
그냥 마주친 시선일 뿐. 우린 아무 사이도 아니었다.
그저 예쁜 여자일 뿐이었다.
밤이 깊어지고 사람들이 서서히 늘어났다.
내가 다시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시선을 옮겼을 때, 그녀는 칵테일을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내 시선을 느낀 그녀의 고개는 나에게 다시 집중되었다. 그녀
는 잔을 내려놓고 술을 삼킨 후 수줍게 웃었다. 나도 따라 어설프게 웃었다.
그녀는 웃음을 머금은 채, 턱을 괴고 바텐더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곧 내
앞에는 위스키 한 잔이 배달되었다. 나는 그녀에게 눈빛을 날렸지만, 그녀는
모르는 척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따라 일어났다.
내 옆에 가만히 누워있던 핸드폰은 온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여보’
스크린에 뜬 짧은 두 글자는 왜 이렇게 무서웠을까? 나는 울리는 전화를 한
참 동안 지니고 있다가 ‘통화’버튼을 누르고 겨우 입을 열었다.
“여보세요?”
“응, 나 ‘여보’야.”
전화 속에 들리는 잡음이 보통이 아니었다. 여자들과 남자들의 수다, 잔잔
히 흐르는 음악소리, 그리고 웃음소리. 잡소리에 정신이 없었던 나는 아내의
장난에 웃을 여유가 없었다.
“응, 왜?”
“아니 그냥, 뭐하나 싶어서.”
“나야 뭐…”
내 시선은 그녀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는 바 안쪽으로 들어가 화장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