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L ISSUE 04 MISTAKE 실수 | Page 62

너를 기 리 며 거기다 바로 위에 붙여진 커다란 사망자 명단에는 너의 이름 밑으로 아내와 딸들의 이 .. . . 름이 적혀져 있다. 내심 네 이름이 대기명단에 올라와 있지 않아 내가 돌아가는 걸 원 했는데도. 그래, 지금이라도 마음만 먹는다면 돌아설 수 있었다. 나는 그만큼 너의 죽음 을 미치도록 부정하고 싶었다. 애써 무덤덤한 척,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는다. 단지 너에게 일찍 죽음이 닿아버렸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이 소리가 너에겐 섭섭할지. 계단을 다 내려오자 미지근했던 공기는 차갑게 식어있었다. 너의 이름이 적힌 종이가 끼워진 문패를 확인하고 조용히 들어섰다. 너의 조카로 보이 단편소설 남현우 는 고등학생쯤 됐을 법한 사내아이가 내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해주었다. 아이가 신발을 정리하려는 걸 막고, 내가 내 손으로 신발을 정리한 뒤 너의 아내와 딸들을 마주 보며 조문했다. 눈이 퉁퉁 붓고 얼굴이 상당히 수척해진 너의 아내가 날 알아보는 듯했다. 그 말하자면 유감스러운 짓을 한 것이다. 너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나는 사무실에서 서류 리고 너의 사진 앞에서 나는 무릎을 꿇은 채 자세한 상황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를 처리하고 있었고 너의 아내로부터 갑작스레 걸려온 전화로 너의 죽음을 알게 되었 다. 비록 이마에 시간의 주름이 마구 고이기 시작했다 할지라도, 우리에게 남은 삶은 아 직 많았고 특히나 너는 조금만 기다렸다면 딸의 결혼식을 볼 수 있을 터였다. 나는 너 를 위하여 업무를 대충 해치우곤 검은 정장을 챙겨 지금쯤 너의 사진을 보며 미친 듯이 울부짖고 있을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한여름철이라서 그런지, 비록 이르다곤 하 나 퇴근길임에도 밤 같지 않고 여전히 하늘은 푸르스름한 빛을 간직하고 있다. 차가 막혀, 가만히 운전대를 잡고 하늘을 보고 있으니 마음 한편으로부터 초라하게 너 를 그리기 시작했다. 너를 처음 만났던 고등학교 시절. 그것은 꾸역꾸역 밀려 올라와 분 명 고된 업무로 텅 비어버렸을 내 머릿속을 채워갔다. 고등학교 시절 때부터 조용하게 지내던 나와는 달리, 너는 정말 ‘남자답게’라는 말버릇을 가지고 절대 누구에게도 기죽 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곤 했다. 어쩌면 당시 숫기없던 내게 다가온 너를 내가 기꺼이 받아들인 것도 너를 동경했었던 이유인지도 모른다. 점점 과거에 있던 일이 하나 둘, 스 쳐 지나갔다. 즐거웠던 추억을 하나하나 꼽으니 이미 도착해있었다. 차 문을 여니 미지근한 공기가 온몸에 와 닿는다. 지금 네가 있는 그곳은 추운가. 너에게 묻고 싶다. 머리를 가볍게 한 번 털어 잡념을 버리고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벌써 계단 안쪽 깊숙한 곳으로부터 곡소 리가 들리는 것 같아 불현듯 마음이 초조해진다. ―너는 대체 왜 그랬는가? 친척들과 조문객들에게 그렇게 설명을 했었을 터인데도 너의 아내는 그 이야기를 꺼내 자 눈시울이 다시 붉어졌다. 말하기 버거운 상황인 듯하여 터져 나오려 하는 질문들을 꾹 억눌렀다. 네가 출장 탓에 가족과 잠시 떨어져 있던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몸이 그렇게 아팠 다면 너는 하다못해 너의 아내에게라도 말을 해야 했다. 심장이 좋지 않아서 독한 약 을 먹고 있었다면, 말을 해야 했다. 약이 소화되지 않아 소방서에 전화를 걸 때 동안 너 는 얼마나 괴로웠을는지 나는 상상할 수 없다. 노쇠한 위가 그 기능에 비해 너무나 독 한 약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심장이 우그러들어 버렸을 때의 고통은 나로선 차마 이 해조차 할 수 없다. 그러고 보니 너는 같이 학교에 다닐 적에도 나에게 그런 말을 했었다. 남에게 쓸데없 는 걱정은 주지 않는다. 그게 남자다운 거다, 라고. 나는 그때 너를 말렸어야 했다. 동경 의 눈빛으로 쳐다보지 않고, 너를 필사적으로 막았어야만 했던 것이다. 너를 말리지 않 은 나의 실수였으며, 남자다움을 고집하다 돌이킬 수 없게 된 너의 실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