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NB Magazine_Jan_2023_Mobile | Page 92

│STORY│ 특별기고
세네갈 전임 이시영 대사 , 김대성 대사 , 세네갈 경제사회 위원회 산야 위원장과의 회동
토고 에야데마 대통령과 면담
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후 당신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 어깨를 토닥이고 웃으며 공원들과 눈 맞춰 인사하시는 모습은 방문 때마다 쉽게 볼 수 있던 일 상이었습니다 . 이기고 누르고 통제함으로써가 아니라 설득하고 이해하고 존 중하는 사장님의 리더십은 지금 세상에서도 찾고 기다리는 리더십으로 인정 될 세련된 모습이었습니다 .
50년 생산 현장을 지키셨으니 길어야 10년 혹은 20년 , 구매와 개발 권력을 휘 두르는 바이어 측 젊은 일꾼들이 가당치 않은 많은 순간이 있으셨겠지만 그 들을 상대함에 있어 급하거나 속단이 없으셨습니다 . 듣고 말씀하시고 몰라서 하는 무리한 요구마저 들어 주시려 노력했습니다 . 바이어의 억측조차 시장의 현재 현실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대하셨기에 , 시간이 흐르면서 김 사장님을 대 하는 바이어들이 오히려 요구를 절제하고 공장 상황을 헤아리며 대화에 임 하게 하셨습니다 . 인모 제품 판매가 정점을 찍고 추락하던 시기 , 제가 몸담고 있던 회사의 인모 판매 비중을 줄이고 신테틱 제품 판매 비중을 높이기 위한 중장기 플랜을 가지고 중국과 인도네시아를 여러 번 찾았습니다 . 중국 공장 들은 아직은 돈이 되는 인모에 미련을 놓지 않고 있었고 인도네시아 공장들 은 돈이 되는 가발에 차별적 집중을 하고 있었습니다 . 당시 저로서는 모자란 가발 케파를 급격하게 키우거나 무리하게 요구하는 방법보다는 앞서 있는 회 사들의 관심이 덜한 위빙과 헤어피스에 우선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그 때 미성은 이미 ‘ 프리즘 ’ 이라는 자체 브랜드로 아프리카 마켓의 프리미엄 신 테틱 위빙 시장을 견고하게 장악하고 있어 , 미성의 경험과 기술을 이전 받으 면 일이 쉬운 상황이었습니다 . 이야기를 다 들은 후 김 사장님은 원한다면 동 일 브랜드를 사용해도 좋으니 북미 시장에 고급 신테틱 위빙 시장을 만들어 보라며 격려와 생산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 사장님도 인모 시장의 추락 과 신테틱 시장 성장이라는 미래 판단에 힘을 실어 주셨고 , 덕분에 회사는 그 위빙 제품을 기점으로 새로운 시장에 안전하게 진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가발업의 지난 역사를 복기하면 미성의 전성기가 전 세계 한인 가발 사업의 전 성기였음을 누구나 인정하게 됩니다 . 그때는 아직 가발 시장이 물량의 경제라 는 늪에 빠져들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품질이 우선 , 가격이 그 다음이었습니다 . 제한된 가발 생산 케파가 그 케파 안에서 고품질 제품 생산의 우선순위를 결 정해 주는 역할을 자연스럽게 감당해 주는 측면도 있었으나 수입 도매상과 공 장이 힘을 합하여 차별화된 디자인 , 남보다 더 좋은 품질을 경쟁력의 핵심으 로 삼아 한인 가발 사업 최고의 전성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 미성은 수입 도 매 업체들의 까다로운 요구에 맞추어 신제품을 출시해 주었고 출시된 신제품 의 품질은 자체 QC과정을 통하여 엄격하게 지켜 냈습니다 . 누군가 경쟁사 제 품의 카피를 요구하면 거절했고 생산 원가를 위협하는 저가의 대량 오더라는 유혹은 피했습니다 . 그래서 한때는 미국으로 수입되는 가발 중 미성이 생산한 제품에 대한 소비자 만족도가 높아 수입상 요청으로 미성이 만들었다는 택을 별도로 달아 북미 시장에 공급하기도 했습니다 . 제가 이 업에 발을 디딘 초창
기만 해도 가발 전문점 주인분들은 꽃망으로 만든 미성의 제품을 쉽게 알아 보셨고 주문 시 주저함이 없으셨습니다 . 세일즈맨들의 입에서 “ 신제품인데요 , 미성에서 들어와요 ” 가 세일즈 용어였던 세상이었습니다 . 돌이켜 시장과 바이 어에게서 그렇게 품질로 인정받고 품질로 사랑받던 가발 공장이 미성 말고 또 어디 다른 곳이 있었는가 싶습니다 . 은퇴의 시점에서 김 사장님은 생각이 많 으셨습니다 . 당신의 시대를 지나 후대에게 물려주는 미성의 경쟁력이 무엇인 지 묻고 계셨습니다 . 시대가 요구하는 쉽고 싸게 만들어 저가에 대량 공급하 는 길을 가지 않은 것이 올바른 선택이었는지 자문하고 계셨습니다 . 인건비 비 중이 높은 가발 제품의 가격이 내려가려면 인건비를 착취하든지 원자재의 품 질을 낮추든지 공정을 단순화시키는 일 밖에 없습니다 . 그러나 더 이상의 인건 비 하락은 기대하기 어려우며 저질의 원사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충성도 높은 소비자 확보가 어렵고 , 공정을 단순화시키면 편하고 오래 사용이 가능한 품질 이 나오지 않는 것이 가발입니다 . 그 사실을 알면서도 저가 대량 공급으로 시 장 권력을 잡아 보겠다는 욕망으로 그 길을 가면 반드시 시장의 보복이 우리 에게 가해지게 될 것입니다 . 인모의 품질을 떨어트리며 오직 가격으로만 경쟁 한 오늘의 결과를 가발에서도 맞이하게 될 것은 자명한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 김병철 사장님은 오래전 당신에게 가발 일을 가르쳐 주신 이봉상 부회장님의 말을 결어처럼 혼잣말로 하셨습니다 . “ 최고의 품질이 아니면 만들지를 마라 ”.
미성 50년 근속 김병철 사장님 송별의 말에 사족을 붙인다면 , 부디 미성의 후진들이 품질 우선이라는 미성의 전통으로 미성의 새로운 시대를 여시라 는 것입니다 .
김병철 사장님 약력
1945 함경도 함흥에서 출생 , 1.4 후퇴 때 피난 1964 동아고등학교 졸업 , 동아대학교 입학 1965 육군 입대 1967 삼천리 연탄 입사 1971 삼탄 정암 광업소 1972 미성상사 입사 1983 미성 아프리카 세네갈 대표 1993 미성 인도네시아 대표 2022 50년간 근속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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