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WEEN THE LINES ISSUE 10 'YOU' | Page 80

차예은 것 애매 에, 아름다 기 운 하 ‘너’라는 것은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 에서 ‘너’가 민주주의로도 해석될 수 있다하니, 이것으로 설명은 끝난 것 같다. 그런 의미로, 나 는 ‘너’를 나의 어린 시절로 잡고 싶다. ‘갈 곳 잃은 여행가방’이란 말이 생각나는 만큼 나는 어쩌면 조금 애매한 삶을 살았을지 모 른다. 이젠 나보다는 ‘너’에 더 가까워진 어린 시절을 생각하자면 더 그런 것 같다. 그때의 나는, 그러니까 너는 조금 더 순수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에 다가갔었고 부단히 노력했다. 넌 그림을 좋아했고, 너는 내게 그림이 무엇인지 가르쳐줬다. 너는 네가 좋아 그림을 그리고 즐거워했지 만, 나는 내가 좋아 그림을 그렸어도 그리고는 슬퍼하고 있다. 화제를 바꾸어, 관념적인 ‘너’가 아닌 진짜 나의 친구 ‘너’는 피아노를 좋아해서 전공하고자 마음먹은, 그런 사람이었다. 힘들어했지만 당차게 버티던 너의 카카오톡 상태메세지가 영화 < 아마데우스>에 나오는 “왜 그런 바람을 갖게 했을까? 욕망을 갖게 했으면 재능도 주셨어야지.” 라는 대사의 캡쳐본으로 바뀐 것을 보았을 때 머리가 복잡해진 것은 어쩌면, 거기서 내 모습이 겹쳐보였기 때문일까. 그 때 내가 그 친구에게 해 준 위로는 조금 뒤에 가서 말하도록 하겠다. 어린 시절의 나인 네가 준 애매한 재능은 사실 잔인했다. 애매한 재능은 잔인하다, 이 말 만 큼 나에게 깊게 다가오는 말은 없었다. 내가 아무리 그림을 좋아해도 내 위에는 수많은 사람들 이 있고 나는 그 아래 수많은 사람 중 하나여서 쉽사리 나서서 그리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하지 만 내가 가진 것 중 그나마 잘하던 것이라 더 위축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어느새 나는 너 를 한꺼번에 통틀어 ‘애매한 재능’ 정도로 취급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나 자신이 생각하는 너 는 ‘행복했던’ 사람이 아니라 ‘애매한 재능을 안겨준 불편한’ 사람으로 변해버린 것이 아닐까. 너를 추억하는 것은 어쩌면 기쁨보다는 슬픔일 거야, 라며 나는 갈 곳 잃은 여행가방 위에 앉아 생각해보았다. 한동안 나의 애매한 재능에, 애매함을 안겨준 너에 대해 깊은 수렁에 빠져 있을 무렵에의 내 상황이었다. 사실, 추억하는 행위 자체에서, 기쁨보다는 슬픔이 먼저 다가오 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결국엔 붙잡을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행복했던 시절에 대한 일 종의 곡(哭)이라고 생각한다. 너에게 보내는 곡소리. 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