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ween The Lines Issue 09 SPARK | Page 78

무제無題 최혁진 단편소설 그래픽 디자인 | 이진우 “잘 가. 오늘 재미있었다.” “그래, 너도 조심히 들어가라. 내일 학교에 서 보자.” 비몽사몽한 채 정수는 누군가와 이야기 하고 있는 듯한 엄마의 음성에 귀를 기 울였다. 의사가 의학 지식이 전혀 없었던 엄마에게 해준 가장 간단하고도 잔인한 설명이었다. 그게 십 년 전 일이었다. 정수는 오늘도 학원을 땡땡이치고 몰래 친 구들과 피시방에 놀러갔다. 초등학교 이후로 항상 엄마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였던 정 수가 그런 짓을 할 거라곤 엄마는 상상도 못 할 것이다. 학원 선생님한테는 단단히 입막 음을 해 놓았고, 친구들도 거칠기는 하지만 일러바칠 아이들은 아니었다. 그야말로 완전 범죄. 이제 시간 좀 때우다가 열한 시 쯤 집 에 들어가면 된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얼굴 을 피곤한 모드로 세팅해 놓으면 엄마는 공 부 열심히 하다 온 줄 안다. 처음엔 엄마를 속인다는 죄책감이 어깨를 짓눌렀지만, 날이 갈수록 둔감해졌다. 온실 속 화초처럼 길러 져 왔던 정수에게 게임은 뿌리칠 수 없을 만 큼 너무 재미있었다. 갈수록 떨어지는 성적 에, 공부에 흥미도 잃어만 갔다. “우리 정수, 괜찮은 건가요?” “스파크...” 엄마의 울음 섞인 목소리의 떨림이 정 수의 귀에 들려왔다. 약간 갈라지고 쉰 듯도 했다. 엄마가 입술을 달싹였다. 슬픔을 감추지 못 한 채 그 스파크 스파크 하며 중얼거리시기 만 했다. 그런 모습을 보는 정수는 말하고 싶었다. 나 잘 있다고. 생각보다 뜨겁지 않 다고. 하지만 말은커녕 손가락 한마디조차 움직일 수 없었다. 미안하다고, 엄마 내가 미안하다고. 학원 도망친 거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할 수 없었다. “아, 춥다 추워.” 시간은 열 시 반. 아직 들어가기엔 이른 시 간이었다. 띠리링- 한 통의 문자음이 정수의 귓가에 들려왔다. 정수는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엄 마는 이 시간에 문자를 한 적이 없었다. 혹 여 엄마한테 들키는 날에 그 날로 끝장이다. 만약 엄마가 알게 되었다면 분명 친구 녀석 들 때문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휴대폰을 확인하던 그 때였다. 끼이익헤드라이트에서 뻗어 나온 한 줄기 빛이 정 수의 모습을 비출 때, 정수의 왠지 모를 불 안감은 현실이 되었다. 정수의 머릿속에서는 스파크가 튀었고, 그 작은 불꽃은 쓰나미처 럼 큰 화마를 몰고 와 정수의 몸을 덮쳤다.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뇌혈관에 손상 이 심각합니다. 구급차가 빨리 옮기기 는 했습니다만 상황을 지켜봐야 하겠습 니다.” 낯설지 않은 의사의 표정에서는 알 듯 말 듯 한 심각함이 묻어나왔고 목소리 에서는 주사바늘 만큼이나 날카로웠 다. 정수는 저런 의사에 표정과 목소리 가 싫었다. 그런 의사가 있는 병원도 싫었다. 아버지의 목숨을 앗아간 병원.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버지를 살리지 못 했던 병원을 말이다. 아버지의 사인은 교통사고로 인한 뇌손 상. 그때, 엄마는 깨어나지 않는 아버 지를 옆에 두고 오열하며 왜 일어나지 않느냐며 의사에게 물었다. 아니, 물음 보다는 절규에 가까웠다. “뇌혈관은 다른 혈관과 똑같아요. 똑같 이 피를 들고 나르고 하죠. 하지만 다 른 혈관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뇌혈관 손상은 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