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無題
최혁진 단편소설
그래픽 디자인 | 이진우
“잘 가. 오늘 재미있었다.”
“그래, 너도 조심히 들어가라. 내일 학교에
서 보자.”
비몽사몽한 채 정수는 누군가와 이야기
하고 있는 듯한 엄마의 음성에 귀를 기
울였다.
의사가 의학 지식이 전혀 없었던 엄마에게
해준 가장 간단하고도 잔인한 설명이었다.
그게 십 년 전 일이었다.
정수는 오늘도 학원을 땡땡이치고 몰래 친
구들과 피시방에 놀러갔다. 초등학교 이후로
항상 엄마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였던 정
수가 그런 짓을 할 거라곤 엄마는 상상도 못
할 것이다. 학원 선생님한테는 단단히 입막
음을 해 놓았고, 친구들도 거칠기는 하지만
일러바칠 아이들은 아니었다. 그야말로 완전
범죄. 이제 시간 좀 때우다가 열한 시 쯤 집
에 들어가면 된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얼굴
을 피곤한 모드로 세팅해 놓으면 엄마는 공
부 열심히 하다 온 줄 안다. 처음엔 엄마를
속인다는 죄책감이 어깨를 짓눌렀지만, 날이
갈수록 둔감해졌다. 온실 속 화초처럼 길러
져 왔던 정수에게 게임은 뿌리칠 수 없을 만
큼 너무 재미있었다. 갈수록 떨어지는 성적
에, 공부에 흥미도 잃어만 갔다.
“우리 정수, 괜찮은 건가요?”
“스파크...”
엄마의 울음 섞인 목소리의 떨림이 정
수의 귀에 들려왔다. 약간 갈라지고 쉰
듯도 했다.
엄마가 입술을 달싹였다. 슬픔을 감추지 못
한 채 그 스파크 스파크 하며 중얼거리시기
만 했다. 그런 모습을 보는 정수는 말하고
싶었다. 나 잘 있다고. 생각보다 뜨겁지 않
다고. 하지만 말은커녕 손가락 한마디조차
움직일 수 없었다. 미안하다고, 엄마 내가
미안하다고. 학원 도망친 거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할 수 없었다.
“아, 춥다 추워.”
시간은 열 시 반. 아직 들어가기엔 이른 시
간이었다.
띠리링- 한 통의 문자음이 정수의 귓가에
들려왔다. 정수는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엄
마는 이 시간에 문자를 한 적이 없었다. 혹
여 엄마한테 들키는 날에 그 날로 끝장이다.
만약 엄마가 알게 되었다면 분명 친구 녀석
들 때문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휴대폰을 확인하던 그 때였다.
끼이익헤드라이트에서 뻗어 나온 한 줄기 빛이 정
수의 모습을 비출 때, 정수의 왠지 모를 불
안감은 현실이 되었다. 정수의 머릿속에서는
스파크가 튀었고, 그 작은 불꽃은 쓰나미처
럼 큰 화마를 몰고 와 정수의 몸을 덮쳤다.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뇌혈관에 손상
이 심각합니다. 구급차가 빨리 옮기기
는 했습니다만 상황을 지켜봐야 하겠습
니다.”
낯설지 않은 의사의 표정에서는 알 듯
말 듯 한 심각함이 묻어나왔고 목소리
에서는 주사바늘 만큼이나 날카로웠
다. 정수는 저런 의사에 표정과 목소리
가 싫었다. 그런 의사가 있는 병원도
싫었다. 아버지의 목숨을 앗아간 병원.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버지를 살리지
못 했던 병원을 말이다.
아버지의 사인은 교통사고로 인한 뇌손
상. 그때, 엄마는 깨어나지 않는 아버
지를 옆에 두고 오열하며 왜 일어나지
않느냐며 의사에게 물었다. 아니, 물음
보다는 절규에 가까웠다.
“뇌혈관은 다른 혈관과 똑같아요. 똑같
이 피를 들고 나르고 하죠. 하지만 다
른 혈관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뇌혈관
손상은 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