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의지할 것이 없어 오로지 불꽃만을 멍청하게 사랑해왔다. 그
는 초점 없는 눈으로 알코올램프에 의해 끓고 있는 용액이 담긴 비이커
를 손에 들고는 냄새를 맡아 보았다. 기분이 몽롱해졌다.
그는 폐용액이 담긴 통을 바라보았다. 그는 충분히 주의사항을 숙지한
숙련된 화학도였다. 그는 아직 심지에 불이 붙어있는 알코올램프를 통
안으로 집어 던졌다.
“빨-리-놀-아-볼-까.”
원상의 중얼거림 이후 꽃이 피었다. 꽃은 무서운 속도로 자라나더니 화
룡(火龍)으로 솟아올라 원상을 휘감았다. 그는 그 와중에도 실험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두 팔을 벌려 화룡을 껴안았다. 그가 만든 자랑스러
운 것이었다. 그가 만든 ‘새로운 불꽃놀이 논문’과 달리 빼앗길 수 없
는 것이었다.
그의 기억들이 화룡 속에서 서서히 떠올랐다.
논문 마감일에, 그의 논문에서 그의 논문엔 그의 이름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선배는 논문 마감 이후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동기들은 그
를 외면했다. 교수들은 그의 논문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다. 그는 그
저 순진한 바보였을 뿐이다. 주변의 모든 이들이 그의 꽃을 짓밟았다.
생애 처음으로 엄마에게 손을 벌려보려, 어리광을 피우려 연락을 취했
지만 그녀는 그를 없는 사람 취급을 했다. 그녀는 오랜만에 나타난 아
들을 경멸하며 새로운 아들을 치마폭에 숨겨 그를 보호했다. 그의 불꽃
이 마침내 후욱, 꺼져버렸다.
그 누구도 원상을 꼭 껴안아 주지 않았다. 오로지 지금 그의 눈앞에 있
는 화룡만이 그를 안아주었다. 그가 용을 껴안았을 때, 그의 꽃은 다시
금 푸른빛을 되찾았다. 그 누구보다도 차갑고 냉혹한 푸른빛으로 변해
버렸다. 아니, 얼어붙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 와중에도, 그의 몸만큼
은 누구보다 뜨거웠다. 그는 부디 자신을, 자신의 꽃을 잊어주지 않기
를 바라며 용을 타고 날아올랐다.
다만 자신을 이 길로 이끈 ‘마법의 주문’은 간직한 채였다. 이전에 그
의 꽃이 재가 된 것처럼, 그 자신도 실험실에서 하나의 재가 되었다.
아이는
찾지 못했다
겨울바람에
쓰러지지도
넘어지지도
불꽃 :
이명진 | 시
그렇다고
식어버리지도 않는
들꽃을
못난 들에서
거친 들에서
봄 되고
가을 되고
못난 들에서
거친 들에서
들꽃을 찾겠다던
아이를
나는
찾지 못햇다
매서븐
오늘은
꽃이 하나
더
는 듯 싶다
64
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