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러져가는
황예린
단편소설
“아직 십대잖아요. 내면에 존재하는 불꽃
을 태워보라는 거죠! 열정을 쏟아내도 두
려움이 없는 나이, 바로 여러분을 칭하는
말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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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껐다. 흥분에 차 얼굴이 붉게 달아오
른 스타강사는 더 이상 화면에 보이지 않
았다. 젊은 나이를 운운하며 무엇이든 도
전해보라는 말 따위를 장황하게 늘어놓던
스타강사도, 그 말에 잃어버린 꿈을 되찾
은 마냥 상기된 얼굴을 하던 앳된 방청객
들도, 모두 어리석다는 생각뿐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Jinwoo Lee
나도 저런 때가 있었다. 인생의 찬란함을
믿었던 순진무구한 시절. 주위 어른들의
띄워주던 예의 치렛말에 속아 뭐라도 될
것이라 생각했던 그 옛날. 어린아이가 내
뱉은 허황된 꿈에 부모님은 아무런 타박
없이 웃어넘겨 주셨고, 선생님이 으레 해
주시는 별것 없는 칭찬에 어깨가 으쓱했고,
TV에 나오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언젠가
저렇게 떵떵거리며 살 것이라, 결코 평범
한 인생은 살지 않으리라 그리 다짐했던.
나 자신은 다른 누구보다도 특별한 인생을
살 것이라, 나는 특별한 사람이라 그리 굳
게 믿었던 그런 시절이, 내게도 분명 존재
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초등학교 시절 8
절 도화지에 예쁘게 그려 넣은 미래의 나
는 아무렇게나 구겨져 쓰레기 소각장 어
딘가에 굴러다니고, 해 질 녘까지 아이들
로 가득 찼던 어린이 놀이터에는 낙엽들
만이 쓸쓸히 자리를 채우고 있을 테지. 어
린 시절 함께 시간을 보내던 친구들은 뿔
뿔이 흩어진 채 서로 바빠 연락도 주고받
지 않으며 주변을 둘러보면 어느새 서로
를 견제하는 경쟁자만이 득실댄다. 언제
나 웃어주실 것만 같았던 선생님은 어떠
한 기준에 매여 학생들을 대하실 뿐이었
고, 끝까지 내 편일 거라 굳게 믿었던 부
모님마저 언젠가부터 나를 보면 한숨밖엔
짓지 않으셨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무엇
이, 어째서 잘못된 것인지, 이유 따위 생
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으레 해왔듯이
다시금 책상 앞에 앉아 참고서를 펼치고
펜을 쥐면 되는 것이다. 때때로 졸음이 밀
려오면 볼을 꼬집어서 잠을 쫓기도 하고,
배가 고프면 일을 나가신 엄마가 식탁 위
에 올려놓았을 이만 원을 쥐고 집 앞 편의
점에 나가 야식을 사 오겠지. 그렇게 시간
을 보내다가 새벽이 되면 쥐었던 펜을 놓
은 뒤 짧은 잠을 꿈도 꿀 새 없이 마치고,
일어나서 다시금 책상 앞에 앉아 같은 일
상을 반복할 것이다.
그래, 그렇게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겠
지. 가슴 속의 불꽃이 아직도 활활 타오르
고 있는지, 아니면 벌써 그을음뿐이 남지
않았는지는 모른 채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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