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ween The Lines Issue 09 SPARK | Page 40

꽃 불 한의진 단편소설 민정은 | 밑그림 푸르렀던 산을 온통 뒤덮은 연분홍 꽃들 을 보 며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올해도 저 산엔 꽃불이 활활 타오르는구나. 꽃이 만발 인 산을 보며 그녀는 일렁이는 불꽃을 떠올 렸을까. 나는 어쩌자고 그 말을 생각해냈을 까. 그녀가 떠난 지금 그런 말들이 무슨 소 용이 있다고. 자꾸만 나타나는 그녀의 모든 말이, 언어와 숨이 나를 슬프게 한다. 하지 만 이제 피하지 않을 것이다. 억지로 기억 을 막지 않을 것이다. 앞으론 꽃이 핀 산을 보며 불꽃을 생각할 것이고, 꽃불을 생각하 던 그녀를 떠올릴 것이다. 그렇게 하면 그 녀를 간직할 수 있다. 그녀와 함께일 수 있 다. 그녀는 나에게 말한다. 꽃이 핀 산. 꽃이 없는 산. 활활 타오르는 꽃불. 그리고 불꽃. 그것들이 의미하는 바를 몰랐다. 이해할 수 없었다.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에 몰래 울었 다. 그녀의 단어들을 받아들일 수 없는 내 가 싫었다. 그녀에게 물어볼 수만 있다면. 하지만 그녀는 떠났다. 그곳이 어디인지 나 는 모른다. 그녀가 알려주지 않았기에 알 수 없다. 그녀는 내가 모르게 몰래 떠났다. 달밤에 내가 자는 틈에. 그 이유도 알 수 없 었다. 화가 나진 않았다. 그녀가 나와의 약 속을 어겼다는 것에 배신감은 느꼈지만, 화 를 낼 순 없었다. 분명 그녀도 울었을 테니 까. 울었겠지? 날 위해서. 아, 그녀가 보고 싶다. 그녀의 얼굴을 떠올 려본다.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 이 모습이 언젠가 흐려질 것을 생각하면 두렵고 가슴 이 먹먹해 온다. 불꽃처럼 일렁이는 그녀의 모습이. 아름다운 그녀의 눈동자가. 그녀가 내 눈앞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혹시 그녀가 존재하고 있는 건 아 닐까? 내 눈앞에 보이지 않을 뿐 날 바라보 고 있을지도. 내가 느끼지 못할 뿐 날 끌어 안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 느낄 수 있다. 뜨거운 그녀의 체온을. 그녀는 이런 말도 했다. 날 그리워하 지 마세요. 자신이 떠남을 암시하는 말 이었을까. 내가 어떻게 그녀를 그리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녀가 그립다. 보고 싶다. 하지만 역시 그녀는 떠났다. 그 사실을 잊어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녀는 어디에 있을까. 그녀는 나에게 말한다. 꽃이 핀 산. 꽃 이 없는 산. 활활 타오르는 꽃불. 그리 고 불꽃. 이 단어들을 알아내고 싶다. 하나하나 분석하고 파헤치고, 연구해서 나에게 스며들게 하고 싶다. 어떻게? 나는 걸 었다. 꽃이 핀 산. 난 산에 올랐다. 그리 고 낙엽 위에 몸을 뉘었다. 낙엽들이 서 로 몸을 부딪치며 내는 소리엔 귀 기울 이지 않았다. 오직 그 단어들을 떠올리 는 데 집중했다. 타오르는 꽃불. 이 산 엔 언제 다시 꽃이 필까. 꽃이 피면 그 녀가 돌아올까. 꽃이 타는 냄새가 난다. 이 근처에서 나는 냄새. 그런가. 꽃이 피면 그녀도 돌아올 것이다. 나는 어느 새 일어나 활활 타오르는 꽃불을 바라 보고 있었다. 꽃잎이 불에 먹혀들어간 다. 비명을 내지르며 재가 되어가는 꽃 송이들. 마치 그녀의 모습처럼 아름답 다. 해가 뜨기 시작하는 새벽. 내 생애 가장 뜨거운 새벽. 그녀와 함께한 새벽. 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