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변천사
장 프랑수아
밀레,
J F s
ean rancoi
불꽃으로 맞선
그의 삶 il
M let
주신혜 비문학
:
사회주의와
자유주의의 사이
보다시피 본 작품에서 어떤 사내 둘이 불꽃을 향
해 팔을 뻗고 있다. 그들이 잡으려는 것은 ‘불꽃’이
다. 불꽃은 생물학적으로 사람이 손으로 잡을 수 없
는 것일뿐더러, 잡는다면 오히려 사람은 화상과 같
은 피해를 입는다. 불꽃은 언제까지나 탈 수 있는 어
떤 물건에 의해야만 생존이 가능하다. 그런데 그들
은 왜 그런 불꽃을 사냥하려는 것일까?
먼저 시대적 상황을 의심해 볼 수 있다. 보통 작품
들은 작가가 직접 겪은 시대적 상황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이 작품을 그린 밀레가 살던 당시는 농업이
매우 발달한 시기였다. 그가 1848년 살롱에 출품한
《곡식을 키질하는 사람》은 그 후 농민생활을 그리는
최초의 계기가 되었다. 또, 그는 시골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농민생활을 가장 잘 그릴 수 있는 환경을 가
때문에, 불꽃, 즉 허무한 희망 앞에는
하층민의 두 가지 애환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 더 희망적이라고 주
장할 수 없는 부분이다. 어쨌든 두 가지
모습 모두, 너무나 처절한 하층민들의
애환과 발악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
다.
이 ‘불꽃사냥’이라는 작품으로, 당시 사
회적으로 뼈아픈 곳을 찔러주어 사회의
발전을 원했던 밀레의 바람이었다.
#1.
불꽃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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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게 되었다. 그가 보는 모든 풍경들은 그때
부터 작품으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농업을 하는 농민들이 모두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아니었다. 위계질서가 존재해 하층민
들은 먹고 살기가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밀
레는 이런 사회의 문제점에 초점을 두었다.
그림을 보면 밭을 매다 만 것 같이 땅이 울
퉁불퉁하다. 그 위로 두 사내가 불꽃을 사냥
하려드는 모습이 보인다. 잡을 수도 없는 불
꽃을 잡으려고 한다면, 이것은 아주 희미하
고 현실로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을 잡으려
는 하층민들의 몸부림이다. 그에 비해 땅에
몸을 납작하게 엎드려있는 두 여인은 사내들과 다르
게 복종하고 사는 하층민의 또 다른 모습이다. 불꽃
때문에 정신없는 와중에도 간절하게 손짓으로 풀을
뽑고 있는 모습이 이 상황을 더욱 극대화 시킨다.
그는 초상화가인 봉 드무첼 밑에서 처음으로 미술 교육을
받았고, 후에 셰르부르로 이사하면서 앙투안 장 그로의
제자인 테오필 랑글루아 드 쉐브르빌레의 화실에서 공부
했다. 초기에 밀레는 전원풍경이나 누드화를 그리기도 했
지만, 주로 유화물감과 크레용, 그리고 파스텔을 사용해
초상화를 그렸다. 1849년에 그는 퐁텐블로 숲속의 작은
마을인 바르비종에 정착했다. 이곳에서 그는 여러 사람들
과 다양한 교제를 하며, 자신의 전성기 양식을 발전시켜
나갔다. 밀레는 농부들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고, 이후
에 풍경화도 그렸는데, 고전주의적인 이탈리아 요소들을
두드러지게 사실주의적인 구조 안에 혼합하는 식이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에 프랑스 사회는 상처를 치유하는 데
매진하고 있었기에, 밀레가 그린 농부 그림과 농촌의 삶
을 다룬 그림들은 당시 논란의 소지가 많았다. 밀레의 작
과거의 밀레, 현재의 밀레, 미 품은 사회주의자들로부터는 찬사를 받았지만, 프랑스 사
래의 밀레. 과거의 밀레는 사회 회의 보수주의자들로부터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주의자로 몰리며 박대를 받았
다. 당시 사람들은 진실을 알기 두려워서 밀레를 오히려 몰아
세워, 군중심리를 이용해 양심의 가책을 덜기위한 하나의 도
구로 쓰지 않았을까. 그 후, 현재와 미래의 밀레. 밀레의 농부
그림은 시간을 초월한 영원성과 깊은 연민의 감정, 그리고 노
동자 계층의 고난이 느껴진다. 밀레는 파리 살롱전에 자신의
작품을 정기적으로 전시했다. <이삭줍기>(1857)와 같은 작품
들에는 호평과 악평 모두가 쏟아졌다. 결국 1867년에 파리 만
국박람회에서 열린 밀레 회고전과 다음 해에 레지옹 도뇌르 훈
장을 받은 것에 힘입어, 밀레는 생전에 얼마간의 성공과 명성
을 얻었다. 그의 작품은 사실주의의 발전과 인상주의, 그리고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고, 특히 빈센
트 반 고흐와 카미유 피사로에게 미친 영향은 대단했다.
사회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의 밀레, 밀레는 말했다
"설사 나를 사회주의자로 생각하더라도, 미술에 있어 인간에
대한 측면이야말로 나를 가장 자극하는 것이다.“
#4.
밀레-밀레-밀레
#3.
사냥감
빈곤과 싸우면서 진지한 태도로 농민생활에서 취재
한 일련의 작품을 제작하여 독특한 시적(詩的) 정감
과 우수에 찬 분위기가 감도는 작풍을 확립, 바르비종
파(派)의 대표적 화가가 되었다. 그러나 다른 바르비
종파 화가들과는 달리 풍경보다는 오히려 농민생활
을 더 많이 그렸다. 그런 가운데 어딘지 모르게 풍기
는 종교적 정감이 감도는 서정성으로 친애감을 자아
냈다. 그의 사냥감은 사회주의를 노린 것도, 그렇다고
자유주의를 노려서 작품을 그리지 않았다. 그저 발전
을 위한 메시지를 담은 것 뿐. 그는 사회주의와 자유
주의 사이의 사냥감이 된 동시에 불꽃을 들고 일어서
려는 의지적인 사람이기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