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exhibition, Pale Blue Dot 2018palebluedot | Page 222

jo eun hee 조은희 [email protected] 010 2714 3826 instagram : @aube_jo @joraengyi_tteok 형용모순 (形容矛盾), (Oxymoron) 2012년 12월 21일 마야 달력이 끝나는 날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는 종말론이 돌았다. 역시 지구는 평화로웠다. 하지만 후세대가 계속해서 번영하리라는 생각과 달리 인간의 역사에 더이상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충분히 섬뜩했다. 마지막까지 사과나무를 심자는 생각은 커녕 의미의 진공상태에 빠진 느낌이었다. 영화 <멜랑콜리아>는 소행성 멜랑콜리아와의 충돌로 인해 지구가 멸망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과학자들의 예측과 달리 주인공 저스틴은 지구가 곧 멸망하리라는 것을 확신한다. 그녀는 불안해하는 언니에게 “지구는 사악해. 없어지더라도 아쉬울 것 없어.”라고 이야기 한다. 어쩌면 그녀는 미래를 위해 고통스러운 현재를 살아가는 것에 지쳐있었을 지 모른다. 의미없게 느껴지는 것을 지속하기란 어렵다. 어린 시절 종교를 가지려고 노력한 적이 있다. 행위와 사고에 대해 준거와 원칙을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했던 것 같다. 그들을 따라 나도 성경책을 사서 읽고, 매일 밤 엉터리로 기도를 했다. 꽤 오랫동안 이런 행위를 반복함에도 나에게 아무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내가 의미를 부여하려했던 생각들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나를 둘러싼 세계를 알 수 없고, 형이상학적인 안전장치를 가질 수 없었다. 내가 무언가를 간절히 바랄 때, 특히 그것이 좋은 일일 경우 실현되는 것이 유독 어렵다고 생각했다. 미래에 대해 품는 희망은 어리석은 현실도피로 느껴진다. 현실을 단순히 견뎌내는 것이 숙명아닐까. 사람은 무언가 목표가 생겼을 때 고통을 참고 이를 위한 행동을 반복한다. 하지만 그 기대가 깨졌을 때 모든 고통은 의미 없는 것이 된다. 이렇게 시시포스적으로 살아가는 인간들은 현재의 연장선인 미래의 행복을 위해 저항적 형극을 헤쳐나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형용모순적인 이미지에 매력을 느낀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우리가 당연히 가치를 부여해왔던 것들을 냉소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