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원 참!
_ 윤 미르
단편소설
사람에게 원이란 존재는 곧 숙명이다. 조그만 원에서 생겨나 원을 통해 탄생한 내
가 지구라는 원에서 살며 순식간에 원으로 빠져버렸다. 이 어이없는 상황에 처음 드
는 생각이 고작 이런 생각이라니 내 머리라도 한 대 쥐어박고 싶지만, 꼬리뼈 쪽에
서 느껴지는 찌릿함에 손가락을 모을 힘도 없다.
그건 그렇고 원으로 빠졌다는 게 무슨 말이냐고?
가끔씩 텔레비전에 나와서 말로만 들을 수 있었던 ‘싱크 홀’이라는 것에 빠진 것
같다. 학교에 늦을까 봐 서두르는 바람에 지름길로 오다가 갑자기 엄청난 굉음에 땅
이 움직이는 걸 느끼고 눈을 꽉 감았었는데, 눈을 떠 보니 난 보통 바닥보다 한 2m
정도 내려앉아 있었다. 뉴스에서 봤을 때는 더 크고 구멍도 컸었는데, 내가 빠진 건
꼭 똥 구덩이만 해 가지고는 뉴스에 나올 것 같지도 않다.
눈을 감고 있을 때만해도 두려움에 벌벌 떨어 식은땀으로 손이 미끄러웠었는데, 멍
하니 하늘만 쳐다보고 있자니, 이상한 용기가 솟는 것이었다. 어차피 죽을 수도 있
었고, 곧 죽을 수도 있는 운명, 움직이지도 않고 이상한 자세로 버티다가 다리에 쥐
가 나서 죽는 것보다는 편안히 누워서 생을 마감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몸을 틀
어 다리를 대자로 뻗었다.
‘아, 편하다.’
바닥도 조금 움직인다고 해서 더 가라앉거나 부서질 것 같지는 않았다.
여름이라 새로 입은 하복 치마 밑, 맨 다리가 울퉁불퉁한 시멘트 바닥에 닿아 차가
운 느낌이 전해져 왔다. 학교 가다가 이게 무슨 일이니. 지각할 뻔 했던 시간이었지
만, 이제는 모든 것이 상관없어졌다. 학교 빨리 가라며 등을 떠밀던 엄마도, 매일 늦
는다며 복도 청소 시키시는 선생님도, 가끔 말을 걸어주면서도, 알 수 없는 표정으
로 나를 바라보는 내 짝꿍도. 오늘은 해방이구나.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되는구나.’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시간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렇게 구름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전혀 모를 정도로 조용히 흘러가는데, 내 삶은 항상 듣기 싫은 불협화
음처럼 삐걱댔다.항상 다른 애들은 쉽고 일상적인 것들이 나에게는 낯설고 힘들게
다가왔고, 나는 그 속에서 ‘다름’이 아닌 ‘틀림’의 감정을 느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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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종이 위에서 움직이는 그들의 손과 이를 주시하는 그들의 눈빛은 나를 주눅 들
게 만들었다. 내 눈에 그들은 마치 원과 같았다.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그들은 빠르게
굴러갔고, 나의 과제는 항상 하나였다.
굴러가는 것, 나는 모든 것이 더뎠다. 각이 있는 사각형처럼 한 걸음 나아가려면 네
번의 머뭇거림을 견디며 애쓰는 것이 내 모습이었다.
한창 하늘을 멍하니 주시하다 보니, 구멍 밖이 너무 조용한 것이 불안했다. 아무리 작
은 구멍이라도 길 중간에 구멍이 생긴 건데,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니. 사실 스
스로 나갈 수 없는 높이기에 소리라도 지르면 누군가 도와줄 수도 있지만, 오랜만에
주어진 휴식을 깨고 싶지는 않았다.
조금만 자자. 시간이 흐를수록 누가 들여다볼까 - 두더지 게임의 두더지처럼 나가기
가 싫어진 게 분명하다. 제발 자고 나서도 이 여유로움이 유지되기를. 난 이 구멍에
들어가 버린 내가 올바른 종착점에 도착한 것이기를 바랬다. 내 삶의 종착점이 한낱
길 한가운데의 구덩이에 불과하다 해도 상관없었다.
“띠리리링.띠리리링”
조용한 구덩이 속을 진동하게 한 것은 바로 핸드폰 벨소리였다. 너무 급작스럽게 일
어난 상황에 까맣게 잊고 있었던 물건이었다. 벨 소리가 끊어지기 전에 급하게 통화버
튼을 눌렀다.
“야! 김원주! 너 학교 안 가고 뭐하고 있는 거야? 선생님 전화 왔잖아! 어디야? 빨
리 학교로 달려가! 아직은 자습시간이니까, 선생님한테는 병원 들렀다가 간다고 해두
었으니까….”
엄마의 목소리가 카랑카랑하니 구덩이 속을 날카롭게 찔러댔다. 선생님의 전화를 받
고서는 흥분했는지, 일방적으로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니, 나 오늘 길을 가는데…….”
말을 꺼내기도 전에 어느새 엄마는 혼자서 전화를 마무리 한 모양이었다.
“하여튼 학교 빨리 가라! 그 이야긴 집에 와서 하고! 엄마 바쁘니까 끊는다!”
전화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끊어졌고, 나는 이제 이 구덩이에서 나가야 한다. 그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