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Circle Between The Lines March, 2014 | Page 40

- 안젤리나 졸리를 봐. 얼마나 매력적이니? 특히 그 턱, 턱 말이야. 그녀는 제 눈앞에 안젤리나 졸리가 있기라도 한 양 꿈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짙게 쌍꺼풀이 진 동그란 눈망울이 우수에 차 어룽어룽했다. 물론 안 젤리나 졸리는 내 앞의 저 여자애보다도 훨씬 아름답다. 한때는 그녀가 나와 같은 지독한 사각 턱이란 데서 위로를 받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녀와 나 사이 의 괴리가 하늘과 땅의 그것과 진배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 리지 않았다. 자신을 ‘정지현’이라 소개한 그녀는 승희의 같은 반 친구였다. 다이 어트를 시작했다는 승희와 나는 서로의 건투를 빌어주는 의미에서 커피 한 잔 씩을 시켜다가 정화수나 되는 양 앞에 두고 담소를 나누던 참이었다. 그런데 불쑥, 어머, 너 승희 아냐, 하는 상투적인 놀람이 묻어있는 말투와 함께 돌연 그녀가 나타난 것이다. 잠깐 앉아도 되지? 하는 말로 그녀는 모든 혼란의 사 태를 정리했었다. 그렇다고 그녀의 말에서 악의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 점이 내겐 좀 아 이러니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뭐랄까 그녀는, 정말로 각진 턱을 갖고 싶어 하는 듯 했다. 말하자면 자기의 잘 빚어진 동그란 턱을 뽐내기 위해서라기보 다는 정녕 사각 턱만 가질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진심이 담긴 얘길 하고 있었다. 오히려 다소간 그녀는 각이 없는 제 턱을 밋밋하고 보잘것 없다고 여기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마치 내가 내 네모난 턱을 가지고 매 양 한탄하듯, 그녀는 자신의 미끈한 턱 라인에서 애상을 느낀다고 말하고 있 었다. 승희가 다급히 화제를 바꾸었다. 그러나 나는 그 이후부터 둘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간혹 가다 내게 말을 건 둘이 무슨 말로 내 반응을 유 도했는지, 내 대답은 또 어떤 것이었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어 떤’ 충격에 의해 혼백이 빠져나간 듯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승희에게서 미안하다는 소릴 들었다. 걔가 그렇게 나쁜 앤 아닌데-. 제 딴에는 진심으로 얘기한 걸 거야. 나도 처음엔 얘가 원래 이 렇게 밥맛인 줄 알았는데, 들어보면 걔도 진짜 외모 콤플렉스란 게 있더라고. 묻지도 않았는데 승희는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 는데도. 신경쓰지 마, 난 괜찮아, 라 말해주자 그제야 승희는 좀 마음이 놓이 는 듯했다. 그리곤 자기의 다이어트 계획에 대해 열변을 토해냈다. 간간이 맞 장구를 치며 깔깔 웃어댔지만 내 머릿속은 온통 다른 생각에 잠겨 있었다. 38 승희와 헤어지고 사진관에 들렀다. 증명사진을 찍으러 왔다고 하자 전의 그 남 자가 흰 의자에 날 앉히곤 사진기를 들었다. 살짝 웃으시고, 아니, 너무 웃으셨 어요, 아, 딱 좋아요, 자, 찍습니다. 번쩍 터지는 플래시 앞에서도 나는 눈을 부 릅떴다. 사실 오른쪽을 좀 더 크게 뜨고 싶었지만 그건 내 능력 밖의 일이었다. 나는 사진사에게 포토샵은 하지 말아주세요, 했다. 그러자 남자의 얼굴엔 당황 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같이 생긴 게 그의 ‘신의 손’을 거절하니 이 여학생은 과연 제정신을 가진 이인가, 말로만 듣던 ‘그 병’ 환자인가, 따위의 의문이 들었을 것 분명했다. 그러나 그는 순순히 내 주문에 응해 주었다. 사진은 정확했다. 내 얼굴은 역시 네모였다. 눈도 왼쪽 것이 좀 더 컸다. 그런데 전에 없이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 얼굴이 달덩이 같이 둥그 스름했었더라면, 나는 내 얼굴에 만족했을 것인가? 그렇게나 고운 원의 얼굴을 가진 그녀조차 사각 턱을 꿈꾸는데. 네모는 원을 꿈꾸지만, 원도 네모를 꿈꿀 때가 있다. 나는 내 얼굴에서 둥 근 것을 찾아보았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서 나는 무결점의 원 두 개를 찾을 수 있었다. 콧구멍이었다. 이게 무슨 짓인가, 픽, 하고 코웃음이 났다. 그래, 나 는 이렇게나 완벽한 원을 두 개나 품고 있으면서 늘 내가 네모라는 현실을 한탄 해왔던 것이다. 원이면 어떻고 네모면 어떤가. 결국 서로를 동경하고 또 질투하 면서도 서로 안에 서로를 품어낼 수밖에 없는 것이 그 두 도형 아니던가. 나는 P군의 포스터 한켠에다 내 증명사진을 붙여놓았다. 그의 얼굴과 내 얼굴은 사 뭇 대조적이었지만 또 그런대로 이질적이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내 얼굴이 어 떤 각을 이루고 있는가에 목숨을 걸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로써 네모의 꿈은 막 을 내린 것이다. 나는 나의 각진 턱을 살짝 쓰다듬으며, 그간 수고 많았어, 해주 었다. 원형의 콧구멍에서 픽, 하는 코웃음이 또 났다. "원도 네모를 꿈꿀 때가 있다." 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