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지훈/ Visual Art
원의 세계
전 혜림 ㅣ시
지구의 중심으로 어둠이 내려앉을 무렵
런던에는 밤이 찾아온다
하늘에 하얀 보름달이 뜨고
그리니치 천문대에 형광등이 켜질 때
천문대 연구실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던 천문학자 하나
일어나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른다
그리니치 천문대 옥상, 둥근 돔 속에 천체관측실이 있다
둥근 천장을 향해 천체망원경이 수직으로 세워져 있다
학자는 스위치를 눌러 천체관측실의 천장을 연다
천장에 실눈 같은 틈새가 생긴다
틈새로 쏟아지는 어둠에 별빛이 섞여 있다
천문학자의 머리 위로 우수수 쏟아지며
관측실 시멘트 바닥 위에 까만 그림자를 만든다
망원경 뒤 철제의자에 앉아
접안렌즈에 눈을 가까이 하는 천문학자
렌즈 너머 원형의 우주가 있고
망원경 렌즈엔 동그란 금성이 포착된다
학자의 둥근 눈동자 위에
돌멩이처럼 눕는 금성
천문학자는
별을 동그랗지 않다고 생각해본 지가 오래되었다
눈동자처럼 그의 별처럼
둥글게 둥글게 압축되어 온
천문학자의 시야
런던에는 하얗고 동그란 보름달이 뜨고
천문학자는 더욱 드넓은 원을 찾아
접안렌즈에 눈을 밀착시킨다 그리고
자꾸만 자꾸만 동그랗게
허리가 휘어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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